사랑에 대한 구질구질한 고민과 <첨밀밀>(1996)
사랑에 대한 나의 입장은 상당히 복잡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사랑 고민 안 해본 사람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느냐만.. 나에게 사랑은 조금 더 복잡한 고민거리다. 보통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의 고민과 달리, 내 사랑의 고민은 형이상학적이고 또 추상적이다. 사실 난 아직도 사랑의 실재를 의심한다. 누군가는 날 보고 베베 꼬였다고 평할지 모르겠지만, '에이 그냥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나라고 가슴이 뛰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애도 해봤고 짝사랑도 해봤다. 다만 그 경험이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을 뿐. 무엇이 나의 사랑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고, 나의 사랑의 허들을 이렇게 높인 것일까?
[충격고백!]
어린 시절 나는 사랑무새였다. '진짜 사랑을 만나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두근) 이런 생각만 머리에 가득하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사랑을 구원이라 여겼으며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안 한 다곤 못하지만,) 몰래 혼자 시를 쓰고, 받는 이 없는 편지를 쓰며 홀로 가슴 설레어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시설 나의 장래희망이 '현모양처'였다는 사실을 나는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확신의 인생 최대 흑역사 TOP10. 철없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로맨스'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계략임에 눈 떠버렸다. 정확한 계기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한창 억압과 권력 불균형,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을 때라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스치게 되었다. 사랑하니까, 여자들은 집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사랑하니까, 남자들은 꼭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고. 누군가에는 고루한 맑시즘 이론이겠지만, 17살 즈음의 나에게는 이게 대단히 놀라운 발견 같았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현모양처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모양처는 군말 없이 야망에게 꿈의 자리를 양보해줬고, 난 여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똑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 사랑은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했던가? 나는 사랑은 이성의 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랑만큼 과대평가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니까'라는 말을 전제로 붙이면 뒤에 어떤 결론이 붙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고, 나 하나라도 맑은 정신으로 사랑의 거대한 힘에 고개를 내젓고 NO! 라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을 자꾸만 거절하는 내 이면에는 어린 시절 형성된 사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취향이란 건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더라. 나는 아직도 사랑 노래를 들으며 울컥하는 걸 좋아하고, 사랑을 다룬 영화를 보며 우는 게 행복하다. 어쩌면 나는 사랑을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사랑이 무섭고 경계되어 사랑을 밀어내는 사람인가 보다.
얼마 전 나는 왕가위의 <타락천사>(1995)를 보고 여명에 반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사랑 영화의 클리셰 같은 느낌 때문에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었지만, 여명의 강렬한 당김으로 인해 나는 <첨밀밀>(1996)을 보게 되었다. 젊은 날의 여명의 멍뭉이 같은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요(장만옥)에 너무 공감했다. (타락천사와 생판 다른 순진하고 청순한 여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대추천합니다.)
이요와 소군은 자신을 언제든 튕겨낼 준비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사랑한다. 의지할 구석 하나 없는 도시에서의 사랑은 그들에게 사치가 아닌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기댈 곳 없는 도시에서,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무슨 낙으로, 아니 무슨 힘으로 삶을 견디겠는가. 그러나 이요는 사랑을 자꾸만 밀어낸다. 감정을 부정하고, 성공과 사랑 둘 다를 거머쥘 순 없다고 생각하며, 소군과 자신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끝내 그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정말 오랜 시간 두 사람은 삶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다. 항상 결핍된 서로의 존재를 떠올리며 발을 내리지 못하고 붕 떠서 부유하듯 살아간다. 물론 애인과 헤어지지 못하고 양다리 간 보기 했던 소군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역시 우유부단한 남자는 no..
이요는 어려워진 형편에 마사지사로 일하며 손님으로 만난 미키마우스 아저씨의 애인이 된다. 미키마우스 아저씨는 돈이 많은 조폭(?)이다. 그리고 도통 웃질 않는 이요를 웃기기 위해 등짝에 미키마우스 문신을 해 이요를 웃게 만드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이요는 결국 아저씨와 10년이 넘도록 함께한다. 이걸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요는 그 사랑의 과정 속에서 자신이 소군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사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온갖 책과 노래, 영화들이 나에게 주입한 '유일무이한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 이게 참 웃기는 부분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리스트'는 100개도 넘게 적는 사람이 사랑을 믿지 않는다니. 나에게 사랑은 너무 좋아하게 될까 무서워 괜히 데면데면하게 거리를 두게 되는 존재.
언젠가 사랑이 찾아오면 지금의 염세적인 태도는 개나 줘버리고 나도 헤벌레 사랑무새가 되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태도로는 결코 사랑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사실 두 쪽 다 두렵다. 사랑 없는 삶도 두렵고, 사랑에 취한 삶도 두렵다. 뭐 어쩌라는 거야.....
지금은 열심히 밀어내고 열심히 겁내고 있지만,
이런 나도. 그래도 삶의 마지막에는 누구던, 무엇이던 떠올리며 이렇게 읊조리며 마무리하고 싶다.
'그건 사랑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