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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 CONNECTOR Dec 07. 2021

[일기 쓰는 여자들] 2. 어른이 되었네

깨달음… 을 가장한 나의 흑역사 목록과 벌새(2018)

어른이 되었네: 첫 번째 깨달음


깨달음이라는 말은 어감부터가 참 좋다.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입이 고소해지는 것 같은 깨,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달. 이 둘을 합친 조합인데 좋지 않을 리가 있는가.

게다가 뜻은 더 좋다.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 티비에서 틀어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거저로 얻는 그런 배움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언가 파동이 일고 공명해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공명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한 이 말을 봤을 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1호선에 그득한 기인들은 나이를 먹어서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아마 젊었을 적에도 젊고 무례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맞다. 누구나 늙을 수 있지만, 누구나 어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른’ 하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벌새>다.

은희에게 영지 선생님은 한자를 잘 읽고, 담배도 피우고, 대학도 다니는 어른이다. 은희에게 인생을 가르쳐주고, 깨달음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벌새>가 은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인만큼, 우리에게도 영지는 참스승이자 참된 어른으로 비친다.

 분명 영지도 누군가의 눈에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상에 젖어있는, 방황하는, 한낱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은희의 어머니에게 영지는 ‘머리에 피도  마른  겉멋이 들어 담배나 뻑뻑 피워대며 남의 딸한테 이상한  가르치는 대학생 것이고, 영지의 어머니에게 영지는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까지 가놓고 휴학이나 하는 헛똑똑이  것이다.


영지를 어른으로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은희다.  어른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반장이 혼자서 ‘나 오늘부터 반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듯,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를 어른으로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나의 얘기로 돌아와 말을 이어가자면, 어린 나에게 (참고로 아직 진행형이다) 어른이라 함은 책임감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구체적으로는 사랑, 그리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인간이다. 그렇기에 아직 방황 중인 나는 무언가 장엄한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 느껴본 적 없다.

… 고 하면 당연 거짓말이겠지. 위의 답변이 나름의 모범답안이었다면, 나의 솔직한 마음은 아래와 같다. 다소 오글거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아이 같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나 자신이 꽤나 어른이 된 것만 같았던 순간들이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착각)했을 때:

낮에 마신 카페라떼. 커피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나는 나는 어떡해

1. 술 먹고 핸드폰 액정을 깨고, 나도 모르게 ‘과외를 하나 더 해야 하나’ 생각했을 때.

2. 쓴 커피를 사랑하는 어른들은 참 희한하다고 늘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그 커피 없이는 하루를 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3. 다모토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셨는데, 해장하며 그들이 나와 친구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그 불편한 상황에 정색하며 술을 그만 권하라고 딱 잘라 말했을 때. 퍽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집 가는 버스에서 서러워서 울었다. 친구는 나를 달랬지. 민주야 기억나니?

4.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을 때. 그리고 채플 시간에 은행 어플 켜놓고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못 낼까 봐 한껏 걱정을 했던 같은 해의 6월.

5. 5만 원짜리 트렌치 살 때도 고심하던 내가, 어느덧 30만 원짜리 트렌치를 살 때.

6. 혼자 여행하며, 벌건 대낮에 혼자 술을 마실 때.

7. 나와 반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저 멀리 외국으로 일 전화를 걸었을 때. 졸지 않은 척, 최대한 포멀 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 얘기를 했을 때.


최대한 솔직하게 적었더니 정말 볼품없고 꼴사납다. 게다가 마지막은 굉장히 최근이고, 아직도 난 이게 제법 어른 같다고 생각 중이긴 하다. 이 글을 읽을 소수의 사람들만이라도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길 바라는 간사한 맘에 추가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ㅎ

2021년의 내 모습. 사진은 써니가 찍어줬다.

우리는 언제쯤 어른이 되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어른은 내가 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나는 평생 어른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아이일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얼마나 ‘어른다운지’에 얽매이지 않고, 귀한 책임감을 목표로 삼은 채 나답게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일기 쓰는 여자들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기획이다. 지금껏 두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 성찰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나에게 사랑의 문턱은 높다. 평생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솔직히 기대도 안된다. 막막하다.


둘째, 나에게 어른의 문턱 또한 높다. 관짝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비겁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기준을 좀 낮춰보면 어떨까.


일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다. 자기 합리화와 자기세뇌의 달인인 나는 사실 어떤 일이라도 나름의 장점을 찾아내 착즙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이라… 사랑이라. 사랑, 사랑, 사랑… 흠.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마지막으로 남겨봅니다.. 내가 얻은 유일한 깨달음

푸하하가 안되면 피식이라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의 저는… 깨달음이나 감동보다는 그냥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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