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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21. 2016

오세브레이로, 밤새 걷다

스페인 산골 작은 마을, 티비에서 만난 한국

교황님이 너희 나라에 계셔. 알고 있니?


그렇구나 바로 오늘이 8월14일. 프란치스꼬 교황님은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꼭 잡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하는 모습과 서울 거리와 낯익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스페인 기자의 모습을 나는 스페인의 어느 산골마을 바르에서 티비로 보고 있었다. 그 낯선 상황이 왠지 감격적이어서 목이 메이고 눈물까지 솟았다.

까미노 후 돌아온 한국에서 가톨릭이 아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위로가 되더라" 고.


[8.14 목요일 / 걸은지 28일째

길은 계속해서 발카르세강을 따라 이어졌다. 하늘 위로 뻗은 고속도로 역시 함께 흘렀다. 산골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트라바델로 외곽에서의 야영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거의 밤을 꼬박 새운 뒤라 실컷 잠을 잤다. 트라바델로를 떠난 시간이 이미 오후 다섯시 즈음이었으니 그동안 못 잔 잠까지 모두 보충한 것 같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선다. 길을 나서는 건 순례자의 숙명이다.

몇 구비를 돌아가니 뜬금없는 장소에 발카르세 호텔이 나왔다. 우리나라 시골길을 가다가 나오는 휴게소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호텔에 딸린 바르에서 빵과 커피를 사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베가 데 발카르세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한번쯤 머무르고 싶은. 하지만 갈 길이 멀고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잠으로 허비했기에 길을 재촉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여덟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체력이 허락하는 대로 걷다가 지치면 적당한 야영장소를 물색해 텐트를 치고 잔다. 더구나 실컷 잤으니 오늘 저 산을 넘어가도 되겠다.

오세브레이로까지는 계속해서 작은 산골마을을 지나게 된다. 베가에서 멀지 않은 Ruitelan, 와인을 사러 들어간 바르에서 티비를 보던 마을 사람 하나가 묻는다.

"혹시 한국인이니?"

그렇다고 하자 "교황님이 너희 나라에 가셨는데, 알고 있니?"

물론이다. 마침 티비에서 교황 프란치스꼬의 방한 소식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서울 거리를 걷는 사람들 사이로 노란 리본이 흔들리는 세월호 천막 분향소의 모습도 보인다. 뉴스에서는 세월호와 교황 이야기가 나오는데 알아들을 길이 없다. 추측하자면 교황님이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실 거라는 이야기, 한국 정부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는 것 같다.

자정 무렵 우리는 까스티야 이 레온과 갈리시아의 주경계를 넘었고 곧 신비한 기운으로 가득한 마을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오세브레이로의 성당 입구에는 두터운 침낭만으로 비박하고 있는 순례자가 잠들어 있었다. 마을 전체가 고요한 가운데 안개 속 동화마을처럼 느껴졌다.

갈리시아 지방에 발을 디뎠으니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머지 않았다.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밤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축축해진 밤 공기 속을 걸어 리냐레스(Liñares)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도로 옆에 안개 속에서 달을 향해 서있는 시커먼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산로케 고개(Alto do San Roque 1,270m)의 순례자상이다. 고산지대 답게 비바람이 거세다 보니 순례자상 역시 무척 힘들게 걸음을 떼는 모습이다.

순례자상 옆에서 바람을 막아가며 라면을 끓여먹고 또다시 걸었다. 어제 하루종일 낮잠을 자서 새벽 세시가 가까운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기왕지사, 밤 새 걷는 김에 일출까지 감상하고 가기로 했다. 마침 산 아래로 구름너울이 펼쳐졌다. 그렇게 한참을 산 위에서 보내고 어느 고갯마루 부근에서 해 뜨기를 기다렸다. 장엄한 새벽을 맞이하며 침묵 속에 우리나라와 교황님과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렸다. 일출이 시작되자 금방 날이 밝아왔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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