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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Dec 14. 2023

혼술

여수 번외 편

웰컴이라며 손에 쥐어준 쿠폰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쿠폰도 제 할 일을 다해야 마음이 편할 터 우리는 곧장 펍으로 향했다. 쿠폰과 맞바꾼 묵직한 잔을 받아 들고는 촘촘히 맺힌 맥주 방울을 쳐다봤다. 손목을 까딱 흔들자 놀란 방울들이 한꺼번에 치솟더니 거품으로 꺼졌다. 먹어야겠다. 전직 방울들과 여전히 제 역할을 하는 방울들이 섞여 내 목을 타고 들어왔다. 속 안에서 팡팡 터지는 것들이 왠지 내가 할 일을 대신하는 것 같아 고마움이 들었다.


금세 볼만한 것이 없어진 잔을 계산대에 도로 가져가 건넸다. 그리고 다시 방울방울 잔으로 바꿔 달라고 말했다. 취기가 살짝 오르니까 모든 것이 낙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수영하고 있는 한 가족의 입 모양을 보며 무슨 말인지 맞혀보기도 하고, 칸초가 최고라며 열변을 토하는 한 어린이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기도 했다. 상대를 정해 덩달아 웃어버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두 번째 방울방울 잔이 도착했다. 아까처럼 손목을 까딱였다간 곧바로 넘칠 것만 같은 잔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소리를 내 웃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도록 연락처 목록을 뒤졌다.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에게 차례로 연락을 돌리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웃다 보니 어느새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에게 피곤함은 이제 잠이 들 수 있겠다는 신호와 같았기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옷을 하나둘 벗으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포근한 침대에 쏙 들어가, 눈만 감으면 잘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야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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