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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Dec 26. 2023

20년 전 크리스마스에는

양말을 걸어두었던 기억이 나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가 되면 양말을 걸어두던 시절도 있었네. 부지런히 핸드폰 속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던 미선은 알록달록한 양말 코너에 시선을 빼앗겼다. 눈앞에는 빨강 초록의 양말들이, 귓가에는 짤랑짤랑 캐럴이 들리니 미선은 어느새 가만히 멈춰 그때의 생각에 잠겼다.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 내 키만 한 나무 앞에 섰어. 그 나무는 여름마다 잔가지를 쳐낸 탓에 늘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 나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장난감을 달아놓고는 그 위에 양말을 살포시 덮어 놓았어. 그러고는 집으로 도로 뛰어 올라가 베란다 창문 앞에 바짝 붙었지. 나는 시린 발을 비벼가며 누군가 그 나무를 지나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단다. 그런데 한참 동안 기다려도 나무 위의 양말을 들쳐 보는 사람은 없었어. 그도 그럴 것이 시골의 주말은 시간이 멈춘 듯이 조용하거든. 다들 옆 도시로 놀러 나간 건지 주차장은 텅텅 비고, 집 안에 콕 들어박혀 텔레비전을 보는 건지 지나다니는 건 짹짹거리는 새들뿐이었지. 아무튼 나는 금세 재미를 잃어버리고 양말을 걷어 왔단다. 촉촉해진 양말을 애꿎은 집 문고리에 심술궂게 씌워두고는 낮잠에 들었지. 시간이 한참 지났는지 현관문에 매달린 종이 울리자, 아빠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어. 느지막이 집에 돌아온 아빠는 양말을 발견하고는 천 원짜리 몇 장을 꽂아 자는 내 옆에 놓았어. 나는 눈을 꿈뻑이기를 반복하다 꿈에서인지 현실에서인지 ‘아빠 고마워’라고 속삭였던 기억이 나.”


종소리를 내던 노래가 꺼지고 다이소에 온 걸 환영한다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미선은 까만 화면으로 바뀔 뻔한 핸드폰을 톡톡 쳐 깨우고는 다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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