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민진 저, 문학사상, 이미정 역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매를 통해 언청이에게 시집 가게 된 엄마. 장애는 있을 지언정, 가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이웃에게 친절했던 아빠. 이 부부는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하지만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세 번을 연달아 죽어버렸다. 그리고 네 번째로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아기가 세 살이 될 때까지 그들 옆에 누운 작은 몸뚱이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지를 몇 번이고 계속 확인했다. 그들의 넷째 딸이자 유일한 자식인 '선자'는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났고, 부모에게는 딸아이의 웃는 모습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선자는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일본에 건너가 살게 된다. 일제 강점기, 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를 걸쳐 일본에서 살아가야 했던 조선인들의 삶. 일본에서 태어난 선자의 자녀들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존재임에도 그곳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핍박 속에서 그저 살고자 한 것인데, 평범한 삶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임에도, 너무나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정말 그런 취급을 받고 살았던 걸까? 정말 한국에서도 그들은 이방인 대접을 받았던걸까? 그때는 그렇다 쳐도, 설마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인가? 이런 의문들이 계속 됐다. 전쟁이라고는 경험해보지 못했고, 공정하지 않은 처우에 목소리를 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였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선자와 이삭과 노아, 모자수의 이야기에 너무 마음 아파 때로는 눈물이 났던 이유는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기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비단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사명이라는 이유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 인간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일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학교에서는 욕을 얻어먹고, 사회에서도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일, 인간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여전히 그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누구든지 그러한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삶을 살아간다. 국가의 일, 사회의 일, 민족의 일, 그런 것들은 일단 내려놓고, 그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부대끼면서, 아껴주면서, 없는 형편에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돌봐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돌봐주면서 기쁨을 맛 본다.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소설의 첫 줄처럼. 내국인의 삶이든 외국인의 삶이든, 모두 그저 인간의 삶이다.
감사할 것이 많은 일상이다. 운 좋게 이 시대에 태어나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럼에도 남보다 덜 가진 것들을 아쉬워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돌아보면 내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힘들었던 순간도, 모두 지나간다.
단단히 각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만큼 잘 살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고통이란 인생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 실수해도 괜찮다. 그런 형편없는 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면 된다. 때로는 내가 가지는 것보다 내 것을 내어주는 일이 더 행복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