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한 대학생 새내기 시절,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나왔다. 내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세상에 있다니 반갑기도 했다. 관람을 마치고 영화관에서 나올 즘, 영화가 내가 생각하던 바와는 다름을 깨달았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빠 술 심부름을 하던 무렵부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동생을 달고 슈퍼에 다녀오면서,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한다는데, 어린 내 눈에는 부모가 사랑해서 결혼한 것 같지 않았다. 왜 결혼해서 때리고 맞는 관계를 유지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결혼은 미친 짓이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금 나는 7년 차 주부이고, 할 수만 있다면 남편과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오래오래 할 작정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던 어릴 적 믿음을 버린 계기가 무엇이었나? 연애가 몇 번 파국으로 끝나고, 나는 심하게 외로워졌다. 삼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 결단을 내려야 함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결혼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결혼할 상대도 애인도 없이, 혼자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을 이유는 참 많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떠올랐다. 나는 살면서 결혼과 가정의 좋은 점을 그다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반대로 좋은 점을 경험하고 싶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했다.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제가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 말 들으셨죠. 취소해주세요. 결혼하고 싶습니다. 결혼의 좋은 것, 가정의 좋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요" 하나님은 내 기도를 어떻게 들으셨을까. 분명 껄껄 웃으셨을 거다. 그리고 가정에 무참히 실망했지만,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내 간절함에 그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을까. 나는 부모의 결혼에 무참히 실망한 덕분에, 내 결혼에 간절하게 희망을 품었다. 돌아보면 엉망진창인 곳에서도 좋은 것들이 나오곤 한다. 인생은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