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이상하다고 확실하게 결론 내린 시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친구 하나가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아빠가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친구 엄마가 어깨를 만져보니 때가 밀리더란다. 친구 엄마는 때도 안 밀었냐면서 남편 등짝을 스매싱하고 도로 목욕탕에 들여보냈단 이야기였다. 이야기하는 친구와 듣는 친구는 깔깔대는데, 나는 도무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를 놀리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고, 보통 부부는 그러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서로 놀리거나 함께 웃는 일을 보지 못했다. 초등 저학년 무렵부터 우리 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날에야 내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우리 집은 확실히 이상했다.
우리 집이 이상하다는 사실은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되었다. 엄마는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나와 여동생이 결혼할 때 흠이 될 거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자면, 엄마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변을 보면 결혼할 때 원가족 일로 반대를 경험하는 사례가 있다. 나 역시 같은 입장이 될 수 있었다. 일례로 남편은 자기 부모님께 우리 아빠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결혼 몇 년 후에 시어머니가 내게 사돈어른이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남편 입장에서 장래 장인어른 이야기를 세세히 하자면, 하지 않아야 좋을 이야기가 무심코 나올까 봐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하지만 엄마 말에서 틀린 점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든 알려지지 않든, 나는 이미 크게 상처받고 흠집이 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나를 배우자로 받아줄 새로운 가족이 아니라, 현재 폭력에서 벗어나고 상처를 치유받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가정폭력이 심하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일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여동생 미래와 결혼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고, 미래에 흠잡히지 않으려면 '너를 위해' 비밀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현명하고 똑똑한 분이셨다. 나는 엄마 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고, 분노든 좌절감이든 가족 비밀이든 저 깊은 속으로 가라앉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차례 주변에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주 은밀하게. 초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하니, 일기에 간헐적으로 엄마 아빠가 싸운다, 무섭다와 같은 이야기를 적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모르셨을 거다. 모범생이자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내가 가정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내가 표현한 싸운다는 수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고등학교 때도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가족 얘기 대신 첫사랑 얘기만 엉뚱하게 하고 말았다. 사실 첫사랑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가족 안에 비밀이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마음을 품는다. 비밀이 드러나길 바라면서도, 누군가 알아챌까 봐 두렵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듯 태연하고 무심한 표정의 가면을 쓰는 데 익숙해진다. 친구에게 가정 폭력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나가는 일인 듯 말한다. 하지만 가면 속 얼굴은 혼란과 절규, 두려움, 수치심, 무기력감으로 가득 차 있다. 가면을 오래 쓰면 무엇이 가면인지, 진짜인지 혼동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