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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 Cat Dec 30. 2023

청춘의 시

by summer wheat


나는 고르게 진열된 이즘의 가판대에서 그냥 서너가지 소비한 것에 불과할 지도 몰라. 내 개성은 온전한 나의 것이 확실한가. 인간들의 시장에 팔리는, 제련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 도식화된 사유의 귀퉁이에 나를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면. 그래 차라리. 잘가라, 8월. 진득하고 습한 기운으로 내 청춘의 농도를 흐려버린 여름, 폭염의 열기로 영감의 우물을 말려버린 잔인한 계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허나 가장 아무런 의미도 없이 지나간 내 스물 하나의 여름, 나는 네 기억을 새로 산 애나멜 구두처럼 공들여 닦지는 않을 작정이다. 선이 곧고 그리운 냄새가 나는 액자틀에 고이 끼워둘 계획도 없다. 나는 너를 버린다. 결이 고운 진흙처럼 세월의 물살에 풀어 흘려보낼 작정이다. 미세하여지길, 형체도 성질도 없는 오직 미립자가 되어 모두 흩어지길. 구토하는 뇌의 마지막 한 줌의 토사물마져 모조리 쏟아버릴테다. 껴안아 줄 수 없어 미안한 내 스물 하나. 잘가라 8월, 잘가라 여름. 잘가라 내 스물 하나의 청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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