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펙과 밴쿠버
드디어 출국일이다. 한여름 날씨에 여행 가방을 끌고 공항버스를 타는 것은 너무 고역일 것 같았다. 세 명이 공항버스를 타는 비용이나, 내 차로 이동하는 비용이나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차로 이동하고 장기주차장에 세워 놓았다. 자기 부상 열차를 타려고 열차 정거장까지 갔는데, 더 이상 운행을 안 한단다. 그래서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공항버스를 타는 것보다 더 땀을 흘린 셈이 되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를 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10시간 정도 걸려서 밴쿠버에 도착했다.
여기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여권 검사 등 입국 절차를 마치고, 다시 짐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와이프의 가방이 우리 쪽으로 오지 않고 옆길로 빠졌다. 우리는 어찌 된 일인지 몰라, 직원이 가방 주인을 찾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런데 도통 직원들이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직원에게 저 가방이 우리 것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가방이 옆길로 샌 사람들)이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 줄에 섰다. 시간은 하염없이 가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직원이 가방을 열어보더니, 별일 없다고 가져가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다음 비행기 출발 시간이 5분 남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가방을 끌고 부리나케 게이트로 뛰었다. 가까스로 출발 직전에 탈 수 있었다. 우리가 타자 마자 비행기 문이 닫히고 출발했다.
3시간쯤 걸려 위니펙에 도착했다. 짐찾는 곳에는 큰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곳 공항은 Baggage claim 구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탑승객이 아니라도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가방은 빨리 나왔다. 그런데, 나머지 세 개의 가방이 도통 나오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핸드폰을 보니, Air Canada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우리 가방 중에서 3개가 비행기를 못 탔으니 나중에 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근처에 위치한 Air Canada Office로 찾아갔다. 우리가 묵을 호텔을 알려주고, 그리로 가방을 보내 달라고 알려주었다. Air Canada에서는 미안하다며 가방을 네 개 주었다. 그 가방에는 잠옷 대용 티셔츠, 샴푸, 면도기, 치약, 칫솔, 충전 케이블 등이 들어 있었다. 가방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딱 필요한 물품이었기에,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
예약했던 렌터카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시간은 저녁 8시. 호텔에서 짐을 풀고 1층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햄버거, 피시 앤 칩스, 립, 미트볼.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한 식사였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처음 먹은 식사였다. 가격은 9만 4천 원 정도 나왔다. 호텔 식당이라 비싼 듯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큰딸은 학기 중이기 때문에 낮에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식사 후 기숙사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구글 지도에 다운로드하여 놓은 오프라인 맵 때문에, 핸드폰 데이터를 쓰지 않고도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그 덕분에 초행길임에도 별문제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미리 봐 두었던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허탕을 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둘째 아들과 함께 위니펙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인 인권박물관에 갔다. 점심은 큰딸과 만나, 큰딸이 봐 둔 식당에서 양고기와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큰딸이 이사할 하숙집을 둘러보고, 근처 쇼핑몰을 구경했다. 캐나다 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면티를 하나 샀다. Liquor Mart가 보여서 맥주와 캐나다 위스키를 샀다.
저녁에는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맥주 제조사에서 운영하는 술집에 큰딸과 같이 갔다. 20여 종류의 맥주를 팔고 있었다. 우리는 각각 4종 세트를 주문했다. 총 8 종류의 맥주 맛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위니펙에서 제일 큰 쇼핑몰에 갔다. 둘째 아들은 혼자서 스타벅스에서 음료수를 주문했다. 영어로 막히지 않고 척척 주문하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캐나다에 와서도 잘 적응하겠다 싶었다. 점심때는 큰딸을 만나 프랑스 음식점을 갔다. 큰딸도 영어로 막히지 않고 척척 주문을 했다. 큰딸은 벌써 현지인이 다 된 것 같았다.
저녁때는 홍콩 회사와 인터뷰가 있었다. 호텔 방에서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었다. 가족 여행 와중에 인터뷰를 하다니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식구들은 잘 이해해 주었다. 나는 그 회사가 원하는 스펙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순조로웠고 합격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들뜬 마음에 호텔 방에서 맥주를 취할 때까지 마셨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이 오슬오슬 추웠다. 어제 맥주를 마시고 소파에서 잔 데다가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돌아다니느라 몸살에 걸린 모양이었다. 객지에 나와서 아파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침대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잤다. 나 때문에 식구들도 낮동안 호텔에만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낮 내내 땀을 내며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좀 괜찮아졌다.
저녁때는 장인어른의 친구분과 같이 식사를 했다. 위니펙에서 살고 계신 분이고, 큰딸이 처음 위니펙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것저것 도움을 주셨다. 자기 집에서 재워도 주시고, 같이 교회도 가고, 타시던 자전거도 주고, 여기저기 차편도 제공해 주셨다. 머나먼 타지에, 한국 사람, 그것도 동향 사람, 그것도 장인어른의 친구분이 계시니 큰 안심이 되었다.
위니펙에서 마지막 날이다. 동물원을 구경했다. 거대한 수조에서 수영하는 북극곰을 볼 수 있었다. 실감 나게 만들어 놓은 공룡 모형들도 인상적이었다.
점심때는 캐나다 전통 음식이라는 푸틴을 먹었다. 다음에도 먹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와이프는 이름에 spicy가 있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세상에나. 컵에 고춧가루가 잔뜩 묻혀 있고, 위에는 고추가 동동 떠 있었다. 칵테일과 고추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조합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행기 시간이 좀 남아서, 유명한 관광지인 The Folks Market을 갔다. 관광지스럽게 기념품 가게, 로컬 마켓 등이 모여 있었다. 여기를 왜 이제야 왔을까 싶었다. 와이프는 맥주를 한 잔 시켰다. 야외에 마련된 안락의자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위니펙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즐겼다.
저녁때, 기숙사에서 큰딸을 데리고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로 갔다.
밴쿠버에 도착해서 호텔로 갔다. 금요일 밤 11시가 넘은 시간. 대도시답게 거리는 아직 밝았다. 둘째 아들은 몸이 안 좋은지 바로 잠을 잤고, 나머지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근처에 맥주집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맥주집 안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고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한 시간쯤 맛있게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잘 자고 일어나 보니 아침 11시다. 이런. 체크아웃 시간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다. 어젯밤에 너무 늦게 잤다보다. 부리나케 짐을 싸고 나와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 바로 옆에는 가스타운이라는 번화가였다. 가스타운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나는 캐나다 소고기가 먹어보고 싶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고기 맛은 한국에서 먹어본 소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나다는 미국과 비슷하게 팁을 주는 문화이다. 아이들은 팁을 줘야 한다는 편이었다. 웨이터는 급여가 거의 없기 때문에 팁이 웨이터의 주 수입원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와이프와 나는 팁을 주지 말자는 편이었다. 돈으로 사는 친절함은 진정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팁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웨이터가 카드단말기를 가져왔다. 와이프가 그 단말기를 큰딸에게 주면서 계산을 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는 으레 큰딸이 계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것이 문제였다. 큰딸은 와이프 뜻에 따라 마지못해 팁에 0을 입력해야 했던 것이다. 자기 뜻에 반해서 남이 결정한 것을 실행한 셈이었다. 팁에 0을 입력하는 것은 와이프가 직접 했어야 했다.
오후에는 보드웰 고등학교에 갔다. 둘째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학교는 외딴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무더운 날씨에 SeaBus 터미널에서 30여분을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 안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었고, 밖에서 건물만 구경했다.
우리는 완전히 지쳤다. 학교 앞에 카페가 하나 있길래 들어갔다. 음료수를 시키고 잠시 앉아 있으니 그제야 기운이 돌아왔다. 다시 30분을 걸어 SeaBus 터미널까지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페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건 뭥미?” 하는 표정이다. 여기 사람들은 그 정도로 친절하진 않은 모양이다. 콜택시 전화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알아보고 알려주었다. 결국 내 전화로 직접 콜택시를 불러 SeaBus 터미널까지 갔다.
저녁때, 새 호텔로 이동했다. 밤에는 근처에 있는 English Beach에서 불꽃놀이가 있다고 했다. 와이프와 큰딸은 그것을 보러 갔다. 나는 미국 회사 일이 있어서 호텔방에서 일을 했다. 작은아들은 몸이 안 좋다며 잠을 잤다.
작은아들 몸에서 열이 펄펄 난다. 어제 땡볕에 왔다 갔다 한 것이 탈이 난 것일까? 근처 편의점에서 감기약을 사다 먹였다. 나는 호텔방에서 일을 했고, 와이프와 큰딸은 Granville Island Public Market에 다녀왔다.
밴쿠버에는 위니펙 아저씨의 동생분이 살고 계셨다. 그분도 역시 동향 분이셨다. 저녁때는 그 분과 식사 약속이 있었다. 작은아들이 아파서 나는 못 가고, 큰딸과 와이프만 식사에 동참했다. 식사를 마치고, 와이프는 작은아들의 유학지로 밴쿠버로 결정한 듯했다. 아마도 밴쿠버에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이리라.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둘째는 하룻밤 사이 많이 호전되어, 귀국하기에는 별 지장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고맙게도 밴쿠버 아저씨가 자동차로 픽업을 오신다고 했다. 호텔 앞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그런데, 공항 반대 방향으로 가시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우리가 내일 떠나는 줄 아시고 오늘은 관광을 시켜주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거절할 수 없어서 근처에 있는 Stanley Park만 잽싸게 보고 공항으로 갔다.
캐나다. 둘째 아들이 그렇게 가보고 싶어 하던 나라. 거기에서의 8일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이제 큰딸은 위니펙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얼마 만에 네 식구가 다 같이 모인 여행이던가. 비록 중간에 몸이 아픈 날도 있었지만, 나름 알차고 재미있게 지냈다. 이런 기회가 다음에도 또 있겠지. 큰딸과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 표를 체크인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날벼락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캐나다로 가족 여행 (2) - 위니펙과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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