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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율 Nov 12. 2023

두께 콤플렉스

두꺼운 감자이고 싶었을 뿐인데


저는 두꺼운 감자튀김이 되고 싶었는데요

네가 언제 말했어?

콩알만 한 아기 감자였을 때부터요!

그럼 네가 자기주장을 더 강하게 했어야지.


자기주장. 자기주장은 목소리의 크기로 그 간절함이 측정되는 것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가치는

그렇게 작아도 확실하고 분명했던 나의 주장을 그가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묵살당했다.


그는 이미 나를 감자칩으로 만들 작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의 무기력감과 분노는 심해졌다.


감자칩이나 튀김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아니다. 감자칩은 바삭거리기만 하지 않은가.

감자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그리고 난 두꺼운 감자튀김이 되고 싶었단 말이다.


감자튀김은 프렌치프라이로 불린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가 자신의 나라를 음식이름에 붙여도 그 이름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만큼 맛있으니까.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오히려 자신들이 감자튀김의 원조라고 싸우며 왜 우리 이름이 아닌 프랑스가 들어가냐고 불만이다.

그만큼 맛있는 거다.

나는 정말 두껍게 썰어 방금 튀긴 생감자튀김이 되고 싶었다.

그럼 어쩔 거야 이미 난 얇게 썰렸는데

이게 뭐야. 토네이도 감자조차 될 수없어.

감자조림조차 되지 못해.


내 삶은 그렇게 끝인가





선생님 저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요 선생님. 두께 콤플렉스가 있어요. 근데요 선생님. 두께를 따지지 않는 감자요리들이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튀겨진 거를 찾자. 그래서 지금 제 목표는 해쉬브라운이에요.


해쉬브라운은 아무리 두께가 얇아도 어차피 뭉개질 거라 두께가 상관없대요. 갈린 감자를 뭉쳐서 두께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대요. 냉동식품이라 언제든지 따뜻하게 바로바로 튀겨서 사람들 입에 들어갈 수 있고요. 신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두께 콤플렉스는 잊고 있어요.


힘든 시기를 겪었을 텐데도 방향을 잘 골랐네요.


그런가요?


얇은 감자 슬라이스는 멋쩍게 웃었다.


요즘에는 어린 햇감자들이 막 튀겨지는 영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와요. 지금도 그런 생감자튀김들 보면 속상해요. 너무... 곱고 생기 있고 고소해 보여서요... 저는 이제 햇감자도 아니고... 철 지난 물렁해진 감자 같아 보여서... 빨리 식품이 되어야 하는데...


하지만 다른 감자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모양도 될 수 있어서 혹시 모르잖아요. 스마일 해시브라운이 되어서 저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이 함께 웃어줄지.


부러진 감자 슬라이스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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