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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Nov 16. 2021

산티아고 순례길, 산마틴~아스트로가, 23.26km

22. Day19, 딜레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일은 곰곰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찾아내기엔 어려웠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소한 도전, 실행, 실패를 통해서만 내가 원하는 바를 발견하는 일이 더 많았다.


 오늘은 아스트로가라는 도시로 가는 날이다. 이 도시는 가우디의 미완성 건물로 유명하다. 어제 또 술을 신나게 먹는 바람에 일어날 때는 주변에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부지런히 따라갔다.



 한 2시간쯤 쉬지 않고 걸어간 결과, 어제 처음 봤던 여학생을 만났다. 외국인이랑 같이 걷고 있었는데, 어제 술 마실 때부터 느꼈지만 영어 발음이 보통이 아니다. 알고 보니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3년 동안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왔다고 한다. 당돌한 친구였고, 말하는데 뭔가 자신감이 느껴졌다. 비록 배낭을 메고 걷진 않지만, 심지어 걷는 속도도 당돌해 보였다. 키가 작은데 어떻게 나랑 걷는 속도가 비슷하지....ㅎ


 먼저 이 친구가 나한테 까미노에 왜 왔는지 물었다. 그동안은 새로운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항상 먼저 물어봤는데, 나한테 먼저 물어본 사람은 얘가 처음이었다. 이 친구는 호주에서 카페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카페 포화 현상처럼 현실적인 문제가 따르다 보니 망설여지고, 과연 부모님께 "해보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용기를 얻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항상 고민이 있어도 뭐든 도전했는데, 이제는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제 '데미안'을 읽었던 게 다시 생각났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것',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길' 등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계속 궁금했다. 하지만 까미노 길을 걸으면서 이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일은 까미노 길 위에서 혼자 사색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는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들을 행동하면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도전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하고, 극복하면서 내 스스로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하지?", "이거 해봤자 뭐해?"라고 생각해도 막상 해보면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의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딜레마는 늘 다른 상태를 소망한다는 점이다. 분명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결심에 의해 시작한 일이고, 많은 것을 하고 있고, 많은 여행을 다녔어도, 막상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들을 하고 있고, 다른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걸 부러워하곤 했다.



고민을 하다가 어느덧 아스트로가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오른쪽 사진이 가우디의 미완성 건물이라는데 왜 미완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사진으로 보니깐 완성이 되어 있는 거 같은데..ㅎ



이곳에는 지역 음식이 있었다. 지금까지 같이 걸었던 사람들과, 어제 새로 알게 된 친구들과 같이 가서 먹었다. 인당 23유로 정도 했었고, 순례자들이 한 끼 식사로 먹기에는 분명 비싼 음식이었다. (순례길에서 식사를 할 때는 보통 10유로를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동안 항상 가난하게 먹었기에, 오늘은 내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고 배 터지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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