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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Feb 01. 2022

산티아고 순례길, 트리아카슬라~싸리아, 18.51km

28, Day25, 표지

산티아고까지 가기 위해 새겨진 다양한 표지들처럼 내 삶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오늘은 싸리아로 가는 날, 순례길에게 만나는 마지막 대도시이다. 순례길 여행이 끝나고 남은 7일 정도의 시간 동안 어딜 여행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포르투로 여행을 많이 한다. 잔잔한 항구 도시이고, 거리상으로 가까워서 그곳에서 남은 시간들을 즐긴다. 내 일행 대다수도 포르투로 여행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한 번 가고 싶었던 스페인 남부를 가기로 했다. 말라가까지 비행기가 너무 비싸져서 그동안 예약을 못했다가 오늘에서야 가격이 좀 내려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어제 산꼭대기에서 안개와 비바람이 몰아칠 정도로 안 좋았던 날씨는 온 데 간데없었고,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았다. 조금 남은 내리막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환상적인 날씨에서 같이 걸은 친구와 한껏 폼나게 설정샷도 찍었다ㅎㅎ 


 

  순례길의 마지막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을 걸으면서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쭉 생각났다. 

 표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온갖 종류의 다양한 표지들을 만나게 된다. 시골 풍경에 인위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지로, 노란색 화살표를 기본이고, 돌들을 모아서 만들 화살표, 나무에 그려진 희색, 빨간색 띠, 순례자의 상징을 뜻하는 가리비 모양이 새겨진 비석들, 그리고 갈리시아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남은 거리가 표시된 표지들. 이 수백 개의 표지들을 쭉 지나쳐 왔고, 현재는 약 100km 정도의 거리만의 남아있었다.


 이 수많은 표지들처럼 내 삶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 삶의 목적지가 분명하고 나를 위한 방향이 명확한 표지. 그랬다면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가 자신이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매일, 매달, 매년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순례길은 가야 할 길과 방향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우리 삶과는 다르기에, 그렇기에 이 순례길을 걷는 길이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이어서 그렇게 부러워했나 보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어차피 이 길과도 다를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르기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흉내 내는 완벽해 보이는 삶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우리 스스로가 가는 길이 표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2시가 조금 넘어 싸리아에 도착했다. 싸리아는 생각보다 볼 게 없었지만, 여기서 먹은 피자는 맛있었고, 성당 뒤편에서 바라본 싸리아의 풍격은 예뻤다. 저녁엔 호주 워홀을 오랫동안 했던 SH라는 친구가 우리 쪽 알베르게로 놀러 왔고, 우리랑 같이 걷는 일행이었던 주부 20년 차 아주머니께서 직접 요리를 해주셨다. 맛있는 음식과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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