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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Mar 16. 2024

13개월 간의 파견을 마치다

고속충전(?) 당해버린 이야기

작년 2월 8일의 일이었다.


지잉 지잉~ (핸드폰 진동음)

“네, 000입니다.”

“사무관님, 안녕하세요. 인사과 000 주무관입니다. 다음 주 국무조정실 파견 후보명단에 포함되셔서 연락드립니다. “

“국무조정실로요? 제가요? 언제 발령인가요?“

“다음 주 화요일 자입니다”

“네? 아... 저 지금은 곤란한데요.. 6개월이라도 미뤄주시면 안 될까요..?”

“혹시 왜 그러시나요? 죽어도 안 되는 이유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웃음)”

“아.. 제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남아서요, 제가 벌인 일들도 있고요. 이거 제가 마무리해야 하는데..”

“(웃음) 사무관님, 책임감이 대단하신데요? 죄송하지만 그건 사무관님이 아니라 사무관님 후임자분이 죽을 사유라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체념하며)그럼 혹시 파견 후보자는 몇 명인가요?”

“사무관님 한 분입니다”

“(희망찬 목소리로) 그럼 국조실이 저를 거부할 수도 있겠네요?”

“(웃음) 글쎄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주무관님의 논리에 설득당해 더 이상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실은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을 때는 이미 모든 판이 짜인 후라 거절하거나 딜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난 일 년 반동안 애정을 잔뜩 쏟았던 업무를 내려놓고 국조실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첫 출근한 국조실은 낯설었다. 직전 업무로부터 갑자기 손을 떼다 보니,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것처럼 마음이 허하고 아린 상태기도 했다. (연애를 안 하고 일만 해서 그런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깊게 정든 업무였다)


“(웃음) 사무관님은 파견을 희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 희망한 적 없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나왔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오고 싶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사람으로 인한 고초를 많이 겪었던 탓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경계심이 컸다. 심지어 내 회사도 아닌 다른 회사에 파견이라니, 낯선 땅에 발디딘 이주민처럼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이 조직에 녹아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날이 선 말을 뱉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무원들에게 파견이란 본부를 떠나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회사에서는 내가 고생했던 걸 알고 쉴 기회를 준 것이었고, 나는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찰 뻔했던 것이다.)


  그렇게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일 년 조용히 지내다가 돌아가야지 생각했다. 처음 몇 달은 직전에 맡았던 업무의 후임자와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며 ‘인수인계’라는 명목의 업무 지시(?)를 했다. 헤어진 전남친이 현남친에게 조언하는 꼴이랄까. 그만큼 업무에 미련이 많이 남았었다.


  내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건 날이 풀리고 여름이 다가오면서부터였다. 본부에서도 가본 적 없는 봄소풍(워크숍)을 국조실 사람들과 떠났고, 파견자인 나를 항상 같은 식구처럼 품어주는 직원분들 덕에 얼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흑화했던 나를 표백해 주었다)


  파견자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조직 구성 또한, 내가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여러 부처에서 파견온 사무관들과 많이 친해졌다. 본부에서와 달리, 기수 차이가 나더라도 선후배라기 보단 동료나 친구처럼 지냈다. (원래 군대에서도 옆 부대 사람과는 선후임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저씨일 뿐이다.)

  

  업무 때문이지만 5일간 부산 출장도 함께 다녀오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그렇게 13개월을 보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복귀일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떠나오던 날, 국조실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날 서있고 항상 경계하던 저를 품어주어 감사하다고, 덕분에 표백 잘 마치고 본부로 돌아간다고. 그렇게 난 본부로 복귀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이냐고?


  본부에서는 일 년간 충전기에 잘 꽂아두었던 나를 뽑아서 업무가 쌓여있는 자리로 보냈다. 장관님 1번 관심 사업이란다.

  그래도 인사과는 내가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걸 알고 있기에, 일은 많더라도 사람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자 신경 써준 듯하다. 그 덕에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인사 발령이 날 때마다 그 전의 업무와 이별하는 기분을 느꼈는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새 업무와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택한 업무는 아니더라도 내 업무인 건 맞다. (조선시대 중매결혼이 이런 기분이려나) 새로운 업무와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물론 글쓰기와 유튜브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원래 난 회사일이 바쁠수록 더 열심히 글 썼다. 쥐어 짜야 즙이 나오는 레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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