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작 Jul 18. 2023

윔블던 센터코트의 추억

조코비치 대 머레이

스포츠전문작가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운 일 중 하나는 쉽게 볼수 없는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들의 경기를 현장에서 볼 기회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우사인볼트의 베이징올림픽 세계신기록 현장, 수영 박태환 대 펠프스의 대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메시와 호나우지뉴의 대결 등등. 나의 스포츠작가 서사를 만들어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또하나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줬던 2012년 여름의 윔블턴 센터코트의 추억. 그 순간은 지금도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보상이자 행복으로 기억되고 있다.


보통 종합대회 출장이라는 걸 가면, 작가의 동선은 아주 단순하다. 숙소와 IBC(국제방송센터)를 셔틀버스를 타고 오가는 것 외에는 다른 일정이 거의 없다. 세계각국의 방송국들이 모인 곳이라 기계문제로 냉방에 신경써야하는 IBC에서의 생활은 햇별을 쏘이며 광합성을 해야하는 일과가 휴식의 전부일 정도로 단순하지만 아주 촘촘하고 바쁜 일정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또 각 채널의 방송출연 등을 소화해낼 수 밖에 없다.  오전에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는 일정,  게다가 당시 2012 런던올림픽은 IBC가 외곽에 있는 관계로 런던 시내를 가거나 경기를 보러가려 짬을 내려해도 고속철도를 타고 1시간은 가야하거나 시내 허브로 가서 셔틀을 타야하는 노선이라 그 짬이라는 시간으로는 나갈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딱 하루의 여유가 갑자기 주어진 날이었다. 나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윔블던으로 향했다. IBC가 있던 스트랫포드에서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가 허브에 도착, 거기서 다시 윔블던 테니스코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꽤나 긴 여정. 그동안의 피곤함으로 잠이 올만도 했지만 나는 IBC를 벗어나 탬즈강이 보이는 도로를 지나 윔블던으로 가는 길 내내 세계적인 스타들의 경기를 볼 생각에 잠은 커녕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악동 조코비치와 영국의 자랑 머레이의 남자단식 4강전이 예정돼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입구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올림픽에서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뛰는 경기에 AD카드를 제한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예를들어 NBA스타들이 많은 미국의 농구경기라든지, 수영스타들이나 체조 경기, 그리고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의 경기도 그렇다. 그걸 하이디맨드(high demand)라고도 하는데, 조직위원회가 이 하이디맨드로 규정하면 모든 경기장을 다닐 수 있는 AD카드를 소유했더라도 따로 하이디맨드 관련 AD카드를 발급받지 않으면 경기장 입장이 불가하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개최지 영국의 세계적인 선수 머레이의 준결승이라 하이디맨드로 공지됐을거란 소문이 나돌았다. 이미 암표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 실제로 무척이나 까다롭게 센터코트의 입장을 관리하는 모습에 주눅이 들었지만 거기서 포기할 순 없는 일.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고 센터코트에 미디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마다 AD카드를 내밀면서 "Can I  come in?" 외쳤다. 그 큰 센터코트 한바퀴를 다 돌 때 쯤 나는 반포기 상태로 다시 물었고, 드디어  "OK"    혹시나 그 짧은 사이에도 다른 지시가 전해질까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와!!!!!!!!!!!!!!!!!!!!!!!!!!!!!!!!!!!!!!!!!!!!!!!!! TV로만 봤던 센터코트, 게다가 귀빈석 부근, 코트가 바로 보이는 그 명당자리가 내 자리였다. 멋진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영국 귀족(?)들 옆에서 조코비치와 머레이의 경기를 보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냥 여한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경기 끝까지 '절대 쫓겨나지 말고 이 자리를 사수하자'는 생각만 가득했다. 오죽하면 경기내내 화장실 한번을 안가고 센터코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시간 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앤디(머레이)를 부르며 일방적인 응원을 하는 영국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속으로 또는 입모양으로만 조코비치 화이팅을 외치며 그렇게 나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했다. 비록 조코비치가 지는 경기였을지라도.


11년이 지난 2023년, 조코비치는 그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다시한번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 치렀다. 스무살의 세계1위 알카라스를 상대로. 5세트 접전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알카라스의 패기와 힘에 밀리는 경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당연히 우승컵은 알카라스의 몫이었고, 조코비치는 알카라스 시대의 서막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현장 관중석에서는 은퇴를 한 머레이의 모습도 보였다.  페더러, 나달, 머레이, 조코비치 일명 빅4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관중석에 있는 머레이와 젊은 패기에 밀리는 조코비치를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윔블던을 기억하며 조코비치를, 그리고 머레이를 떠올릴 것이다. 나의 윔블던에는 그들이 있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부상과 재활, 그 두려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