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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ara Aug 31. 2022

으아아, 끄아아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아픔이

 갑작스레 연장된 인턴, 그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동아리 회장 일. 휴식을 목적으로 하던 올해 하반기가 한순간에 가장 바쁜 시기가 되어버렸다. 휴학한 김에 휘적휘적 동아리 회장 일이나 하면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규칙적인 운동도 하면서 때로는 여행도 훌쩍 떠나는 그런 멋진 일상을 꿈꿔왔거늘, 회사도 동아리도 한창 바쁘다. 그래서 날백수 생활 대신 형성된 나의 루틴은-출근 후 야근을 마친다. 회사 노트북을 닫는다. 눈에 초점을 풀고 집에 돌아온다. 내 노트북을 열어 동아리 업무를 한다. 노트북을 닫는다. 침대로 간다. 이상의 과정을 반복, 실시. 평화로운 비키니시티의 가리비들처럼 노트북들만 번갈아 뻐끔뻐끔. 하지만 이 피곤한 몸은 비키니시티와 5000km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주말엔 쉴쏘냐. 한 번뿐인 청춘, 어떻게든 불사른다. 주말을 빌려 격주로 떠나는 1박 2일의 여행, 혹은 무박의 여행-친구와 밤을 새듯 마신 맥주 한 다스의 경지에 이르건 말건, 월요일의 '루틴'은 둔중한 열차처럼 내게 도달한다. 아, 이번 주는 여행 못 가. 밴드부도 해야 하거든-이와 더불어 어떻게든 주말 사이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밴드부 연습과 공연 일정, 역시나 이어지는 뒤풀이. 드럼스틱을 주섬주섬 챙겨 술집으로 가면 몸은 이제 취할 힘도 없는지 마냥 신난 동생들의 소주 원샷 템포에 발을 맞춰도 도통 취할 줄을 모른다. WHO 권장 수면시간? 몰라, 사람 안 죽어.

그런고로 아메리카노는 기본이요, 샷 추가는 미덕이니, 매일 아침 물처럼 들이켠 커피에 속이 쓰려와 노 커피 운동을 실시한다. 만고 끝에 우연처럼 만난 해답은 바로바로..!

몬스터 제로!


유난 떨 것 없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다들 더 열심히,재밌게, 멋지게. 여기에 연애도 사랑도 하면서, 그러다 나이 좀 더 들면 결혼고 하고, 신혼에 육아까지 하면서 살잖아. 그렇게 멋지게 사는 사람들, 투성이잖아. 쓸모 있는 사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잖아. 내가 원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잖아.

어쩌면 이런 마음이려나. 그러니까, 빈틈을 메꾸려는 듯 어떤 잡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나를 지워내려는 듯 일상을 몰아치는 나의 모습이 가끔은 낯설다. 그 낯선 모습에, 밀려드는 일들에 치이다 보면... 으아아!


우리 회사 한 귀퉁이에선 가끔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 단말마의 비명처럼, 스타카토로 "아!"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으아아..."(점차 Fade Out.) 아니면 "끄아아...!"(끝음을 올린다). 저녁 8시를 넘기면 그 산발적인 소리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 그거 내가 할 소린데. 으아아!

하지만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가끔 놀란다.


어, 저 사람은 '으아아'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회사에서 일도 제일 잘하고 나이도 많고, 그래서 연륜이 쌓일 만큼 쌓인 워커홀릭인데. 유난히 '으아아' 데시벨이 높잖아.
 

그래서 어쩌면, 아니 사실은 저 사람도 나와 같구나. 우리는 모두 각자 "아!"거나 "으아아..."거나 "끄아아!"라던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힘듦이 있는 게 아닐까.


때로 우리는 말 이외의 해답을 찾는다. 스스로의 말에 용서받고 다독여지고 위로받을 여력이 없을 때. 말로 옮기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하지만 무너질 용기가 없어서, 혹은 무너지면 안 될 이유가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우리에겐 "으아아!"가 있다. 아픔은 지워 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또 말로 다 하기엔 너무 곡진하니,  우린 으아아- 해버린다.


'으아아 동지'를 먼발치서 만날 때마다 그들과 나의 평안을 바란다. 그대의 '으아아'가 단지 각목처럼 한 기립근과 모래처럼 뻑뻑한 눈 그리고 4번 5번 경추의 압력에 못 이겨 내지르는 소리이길.


지긋지긋 세상만사, 어제의 슬픔도 오늘의 아픔도 "으아아!" 한번에 털어 버리고 빙글빙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발을 맞춰 오늘도 걷는다, 인간들이여!

바쁘고 힘들었던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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