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는 어디에나 있다
가평에 다녀오는 길이었을 겁니다.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과일을 파는 트럭이나 천막들이 보입니다. 바로 차를 세울 순 없으니 멀찍이서부터 간판을 세워 존재를 알리곤 하는데요, 수많은 간판들 사이에서 단번에 눈길을 잡아 끄는 간판이 있었습니다. "밭에서 도망나온 천도복숭아". 카피의 힘을 실감하게 해 주는 간판이었습니다. 저토록 생동감 있게, 독창적으로 싱싱함을 표현할 방법이 또 있을까요? 문득 저 카피를 쓴 분은 어떤 분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일행이 없었다면 가는 길에 꼭 들렀을 겁니다.
생동감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 같습니다. 짧은 글일수록 그렇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라면 대상을 열심히 묘사해서 생동감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한 줄 안에서 결판을 내야 하는 글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대구법, 활유법, 은유와 직유 등 표현 하나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저 카피를 쓰신 분은 활유법을 택했군요. "밭에서 뛰쳐나온 천도복숭아"라고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도망'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더욱 말맛이 사는 는것 같습니다. 작은 다리가 돋아난 복숭아가 우다다다 달려가는 만화적인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 복숭아라면 신선함이야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참 잘 썼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카피라이터가 전문직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으니까요. 광고회사에 속해 있지 않아도 카피라이팅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사실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작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소개서도 그렇고 기획서도 그렇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이는 금연 협조문도 그렇습니다. 카피란 누군가를 설득해 행동을 촉진하는 글이기에 우리가 쓰는 글은 결국 카피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한번 더 고민해 뻔하지 않고 Fun한 것을 찾아내는 일, 한 끗이 다른 글을 써 내는 것. 일상적 카피라이터는 그렇게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카피라이터가 된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웃을 일이 조금은 많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