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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ara Nov 01. 2023

카피소드 #3. "살면 살수록 생맥주는 맛있다"

생생한 탄성이 절로

좋은 카피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카피소드' 시리즈입니다.


"살면 살수록 생맥주는 맛있다"


 오늘의 카피는 일본 산토리의 맥주 광고 카피입니다. 위 지면광고는 TVC를 기반으로 만든 것인데 보자마자 일본 느낌이 물씬 나지 않나요? 카피에서도 일본 특유의 톤 앤 무드가 느껴지는데, 참 번역하기 아쉽습니다. '生'을 번역하는 순간 '살다'의 '生'과 '생'맥주의 '生'이 교차하는 맛이 안 살거든요. 인생과 생맥주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가 사라져 버리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카피가 여전히 강력한 이유는 삶의 한복판에서 퍼올린 인사이트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사이트는 어떤 말로 옮겨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살면 살수록 생맥주가 점점 더 맛있어지는 것, 여러분도 느끼고 계시지 않나요? 저는 백오십 퍼센트 공감합니다.


맥주 맛의 공식


어렸을 땐 맥주 맛을 몰랐습니다. 명절 때 한 두 입 받아먹은 맥주는 시큼하기만 했습니다. 교복을 입고 친구 집에서 몰래 먹은 맥주는 찜찜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마신 맥주는 시원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맛있게 마시긴 했지만 퇴근을 한 뒤 마신 맥주는, 전혀 다른 맛이었습니다. 청량함을 넘어 마음을 씻어내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전에 마시던 것과 분명 같은 맥주였는데도 말이죠. 무엇이 맥주를 더 맛있게 만든 걸까요? 그 비결은 산토리의 또 다른 카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낮의 땀이 밤의 맥주를 맛있게 만든다"


"낮의 땀이 밤의 맥주를 맛있게 만든다." 

산토리의 공식에 따르면, 맥주의 맛은 낮에 흘린 땀의 양과 비례합니다. 분명 어릴 때보다 대학교를 다니며 흘린 땀이 더 많았고, 대학교 뒤풀이 때보다 이곳저곳 회사를 다니며 흘린 땀이 더 많았습니다. 말단 인턴이었지만 회사에서 흘린 땀은 어느 때 흘렸던 땀보다도 끈끈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맛있었던 건지, 그 맛에 중독돼 한동안 퇴근길 '네 캔 만원'을 달고 살았습니다. 미생의 행복을 배웠달까요.


그럼에도 우리에겐


하지만 두 카피를 잘 뜯어보면 맥주 거품보다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낮의 땀이 밤의 맥주를 맛있게 하는데, 살면 살수록 생맥주가 맛있어진다니 말이죠. 나이를 먹을수록 힘든 일이 많아진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사실 지금껏 경험한 바로도 그렇습니다. 맥주 한 잔에 털어버려야 할 마음이 늘어납니다. 삶에 시간이 쌓이며 이런저런 고단함도 함께 쌓이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힘든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세상을 살아내는 힘도 강해지니까요. 그리고 그만큼 맛있어진 생맥주가 있으니까요. 덕분에 삶이 억울하지만은 않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방과 양말을 벗습니다. 냉장고 귀퉁이에서 차가운 맥주캔을 꺼냅니다. 총을 장전하듯 단번에 캔뚜껑을 당깁니다. 베이지색 거품을 입술로 훔치고 크게 꿀꺽꿀꺽 들이킵니다. 하루치 땀이 다 식습니다. 잠시나마 아무 생각도 안 듭니다.

 

이건 정말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오늘 괜찮다면 이렇게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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