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pybara Mar 17. 2024

카피소드 #4. "Pre-Loved Things"

좋은 카피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카피소드' 시리즈입니다.


'카피'라는 글에 대한 제 생각은, 꼭 광고에 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카피라는 것입니다. 설령 사전에까지 실린 표현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해 드릴 표현은 웬만한 카피보다도 더 '카피스러워' 보입니다.


'Pre-Loved'

이 표현, 보신 적 있을까요? 표현 자체만 놓고 보면 헤어진 연인이나 반려동물에 관한 것인지도 싶죠. 그만큼이나 애틋한 온기가 감도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중고(中古)', 즉 "이미 사용하였거나 오래됨"이라는 말을 대체하는 표현입니다.


처음으로 이 표현을 접했던 건 '라이트브라더스'라는 중고 자전거 판매 플랫폼의 SNS 피드를 통해서였습니다. 어떤 주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뤄졌는지를 알 수 없는 중고 탈것의 특성상 구매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함과 걱정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브라더스는 'Pre-Loved'라는 표현을 차용해 중고 자전거를 접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부드럽게 휙, 바꾸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전거를 단순한 물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덤으로 전하면서 말이죠.



잘 쓰인 카피인 줄 알고, 맨 처음 쓰인 곳을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실은 케임브리지 사전에 일종의 신조어처럼 따로 올라와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함께 볼까요?


"새것이 아니고 전에 쓰인 적이 있는 것. 특히 '중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피하며 무언가를 팔 때 사용된다"


사전적 정의는 표현 자체에 비해 객관적인 느낌이 강하군요. 맞습니다. 결국 'Pre-Loved'는 'Second-hand'나 '중고'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Pre-Loved' 상품과 '중고'상품 중 무엇을 더 구매하고 싶어질까요?


'Pre-Loved'라는 표현이 그 어떤 표현보다도 카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카피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죠. 뒤집어 말하자면 글을 통해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면, 우리는 성공적인 카피를 써낸 셈입니다.

이처럼 '중고 상품'을 단순히 낡고 오래된 물건이 아닌, 누군가의 손길과 애정이 어려 있는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 고작 말 한마디로 가능하다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Pre-Loved'라는 표현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지닌 문학적인 울림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사랑받은 물건'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나도 모르게 몇 컷의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 않나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웹툰 제목처럼, 결국 모든 물건은 누군가에겐 처음이었을 테니까 말이죠.

'상상하게 만드는 글'은 힘이 강하다는 사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을 쓸 때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만큼 좋은 표현이라 그런지, 휴가 때 찾은 발리에서도 만날 만큼 사랑받는 'Pre-Loved'였습니다.


이 표현을 접하고 나니 중고로 산 물건들이 새롭게 보이진 않으시나요? 글을 마치고 나면 저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사랑받고 있는 물건들을 한 번씩 되돌아봐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카피소드 #3. "살면 살수록 생맥주는 맛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