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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pr 16. 2024

20140416 십 년의 의미

이제는 눈물보다, 진실이 드러나야 할 시간이다

조물주가 손가락을 열 개로 만든 데는 뜻이 있었을 게다. 열한 개도 아니고, 아홉 개도 아니고, 열 개. 손가락만 그런가, 발가락도 열 개다.


수리학을 아는 건 아니지만, 숫자는 십 년 단위로 센다. 열은 신의 영역이다. 아홉까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정월대보름에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 것도, 나무를 아홉 번 해오는 것도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라고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 즈음 구구단을 외운다. 이 또한 신비로운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읽은 박노해 시인의 [눈물꽃 소년]에 이런 대목이 있더라.


"... 여러분은 시방 아홉 살에 구구단을 외워버린 큰일을 해부렀다. 구구단이 무엇이당가. 천 년이 넘도록 전승해 온 지혜로운 수리다, 이것이여. 느그들은 시방 그 장구한 역사를 이러내분 것이여. 자, 구구단의 끝이 어찌 되는가?"
"구구는 팔십일요!"
"그라제. 구구단의 끝은 81이제. 우리 겨레의 경전이 천부경도 81자고, 노자 선생의 도덕경도 81장이제. 구구단은 비밀한 머시기가 담긴 것이다, 이말이제. 구구는 뭐시다?"
"팔십일요!"
"앞으로 여러분 인생길에 아홉살을 아홉 번이나 살 기회가 주어져 있제이. 창창하고 드높고 탁 트인 날들이 열려 있단 말이시. 그랑께 18살 27살 36살 45살... 아홉을 한 번씩 더할 때마다 시방 구구단을 속에다 새겨버린 오늘처럼, 평생을 품고 나갈 위대한 뭔가를 하나씩 해내불자 이 말이시. 알겄능가!" [눈물꽃 소년], 박노해/ 느린걸음/ 83쪽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아홉까지는 변하지 않던 강산이 열 번째 해에 들어서면 바뀌어 버리는 걸까? 아니면 한 해 한 해 차츰차츰 변하는 걸까? 물리적으로야 후자가 맞겠지만, 심리적으로는 전자다. 아홉 해가 지나고 난 뒤 마지막 한 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아홉 해까지 인간으로서 할 노력을 다 했으면, 나머지 일 년은 조물주가 채워주는 시기랄까.


옆 방에는 말기암을 앓던 어머니가 남모르게 고통을 참고 계시고, 나는 벽 하나를 옆에 둔 다른 방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영화이기를 바랐던 그 장면들은 참혹하게도 생방송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잔인하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수많은 사건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살았어도 이처럼 처참하고 두려운 참사가 있었나 싶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게 했던 십 년 전의 잔인한 그날이여.


아홉 해가 지나고 열 번째 해가 되었다. 아플 만큼 아픈 사람들, 눈물마저 마른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린다. 아이들을 지키다가 순직한 교사들, 승객의 탈출을 돕다가 죽은 선원들, 구조 뒷수습을 하다가 변을 당한 소방대원들이 잠든 묘역에서 열 번째 그날을 맞으며 추모를 한다.


교사였던 자식을 앞세운 아버지의 인사. 그의 목소리는 다 타버린 재처럼 건조하다. 이어 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가 마이크를 받는다. 준비해 온 말들은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불덩이에 자꾸 끊어진다. 2년은 눈물이 다 마르기에 아직 짧은가. 십 년이 되어야 그 어미의 목소리에서도 눈물이 거둬지려나.


십 년. 남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충분히, 넘치도록 겪은 시간이다. 이제는 저절로라도 진실이 드러날 때가 되었다. 십 년은 그럴 수 있는 긴 시간, 의미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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