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인생 50세는 나를 찾을 수 있는 나이이다. 옛날에는 여자로서 다 끝난 인생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난 몸에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기분이다. 걱정거리가 멀리 날아갔다.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 늙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감이 어디론가 싹 사라졌다.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 기분이다. 평생 짐이 아니 짐을 안고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엄마로서의 아내로서의 역할 때문에 나의 인생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살던 곳은 눈이 많이 내려 운전하기가 힘들어 항상 불만을 가졌다. 하얀 눈꽃송이가 하늘 위에서 펑펑 비 줄기를 만들며 아름다움의 극치에 신발도 던져 버린 채 밖으로 뛰쳐나가 눈 위를 뒹굴고 동심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천국이 지옥으로 변했다. 난 운전을 무척 싫어해 평생 운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운전면허증은 필수가 되어 버렸다. 움직일 때마다 모든 식구들이 스케줄을 바꾸어야 했다.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에 운전 면허증을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 그것도 4번이나 떨어져 겨우 손에 넣었다. 이곳은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발달이 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운전은 필수였던 것이다. 이럴 때마다 한국이 그리웠다.
눈이 공포다. 눈 위를 운전하다 미끄러져 잔디에 빠진 차를 꺼내지 못해 아주 추운 곳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고, 또한 뒤차가 심하게 박아 4차 충돌 사고로 인해 차를 폐차시킨 일도 있었다. 그때에도 부서진 차보다도, 아픈 것보다도 눈과의 싸움 끝에 동태가 되어 추위가 더 무서웠다. 출퇴근 시간도 평소 시보다 2시간을 더 운전을 해야만 했다. 어찌 이것뿐일까? 그런 겨울이 무력 6개월이니 눈을 사랑한 나지만 정말 지긋지긋하고 겨울이 공포였다. 눈 위에 운전할 때 살짝살짝 미끄러질 때마다 뒷골이 땅겨 옴싹옴싹 소름이 돋았다.
본의 아니게 따뜻한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어 눈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이곳은 무척 따뜻하고 더위와 싸움을 하지만 그래도 날씨에 너무 감사했다. 따뜻한 햇살이 희망이 보였다. 나이 40대에 무엇을 향해 씨름과 전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하루가 24시간이 모자라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딸한테 나의 힘든 시간을 많이도 이야기했다. 딸이 참 고마웠다. 항상 나의 진정한 친구 같은 조력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이사를 와서 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어디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한인타운이 있고 한국사람들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마트도 대형인데 식당도 많고 떡, 빵, 순대, 팥빙수, 한국과일 등등 평소 시 먹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기분이 좋았다. 특히 한국 커피숍이 있어 한국 빵을 맘대로 먹으면서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어 이중으로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시간만 생기면 커피숍에 가서 살았다.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노는 시간에는 할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빵을 열심히 먹고 한국 사람의 냄새와 한국말을 듣기 위해서이다.
자유 아닌 자유가 소소한 배움의 행복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댄스 교실을 등록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릴 때 무용을 했던 기억이 떠 올라 신이 났다. 댄스를 2시간씩 하면서 어렵지 않은 스텝이라 단순하지만 한국 노래까지 들을 수 있어 아주 열심히 했다. 댄스라기 보단 운동 같아 팔짝팔짝 뛰면서 춤을 췄다. 당연히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다. 노래교실에선 쓰지 않은 목 근육을 풀어주고 선생님의 유머감각에 박장대소하면서 즐겼다. 끝나고 커피숍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한 커피와 거부할 수 없는 빵의 유혹과 함께 보냈다.
이렇게 세월을 잡아먹고살고 있었다.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선 물음조차 해 보지 않으면서 생각 없는 노인네로 전략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아까운 꽃 띠의 10년을 허망하게 보내버린걸 왜 지금 와서 깨닫게 되었을까? 무지로부터 온 행복이 나의 착각인걸 가슴속에 스며들 때엔 너무 나이가 들어 있는 거울 속의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너의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니?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머리가 하얀 칼라로 나의 현재를 얘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