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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26. 2024

나는 가끔 숨 쉬는 게 귀찮다.

그럴 때가 있다. 숨을 쉬는 것도 싫은 날.

나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십 대와 이십 대를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자살을 거의 매일 생각할 만큼.

그런 나에게 삶이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존재가 아이였다. 아이를 위해 아프면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살고 내일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행복한 기억이 너무 없어서였을 것이다. 사람은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행복한 기억으로 산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 살 이유가 생겼다. 행복한 기억,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찡그린 얼굴마저 사랑스러운 수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에도 가끔 숨쉬기가 귀찮아질 때가 있다. 보통은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이다. 사람을 많이 사귀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과 오래 만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맞지 않으면 상처를 깊게 받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것으로 상처받을 일을 줄이고 있다. 그런데 가족과는 쉽지가 않다. 오 남매, 형제자매가 많지만 나와 성격이 맞거나 마음이 맞는 형제는 없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맞추고 만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도 그들도 너무 달라서 쉽지 않다. 그런 관계를 가족이니까 맞추고 참고 지내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상처를 쉽게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믿기는 했다. 그런데 가족도 나를 속이고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마음이 아팠다. 많이 아팠다. 나는 가족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아파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나는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는 나 빼고 다른 형제들만 챙겼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까지 엄마한테 부담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다른 형제들한테 받은 상처를 나한테 원망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힘들게 우리를 키워준 엄마라서 나는 엄마를 존경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래서 엄마한테는 받기보다 주려고 했다. 어쩌다 받아도 죄스러웠다. 그랬더니 나만 빼고 다른 자식들한테 다 퍼주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니까. 나한테 화내고 원망하고 그럴 때는 힘이 들었다.


엄마가 여자라는 것을 몰랐다면 나는 정말 엄마를 미워했을 것이다. 사십 대의 엄마가 마을 잔치에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 앞에서 한껏 멋 내고 가던 장면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엄마가 싫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우리를 키워냈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엄마가 다른 형제들한테 받은 상처 나한테 쏟아낼 때도 여행 한번 더 가고, 엄마랑 맛있는 거 한번 더 먹으러 가면서 풀어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겠다. 떼쓰고 화내고 원망하면 그 자식이 엄마는 안쓰러운가 보다. 그래서 아무 말 안 하는 자식은 만만하고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자식을 위해 나한테 거짓말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부모라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자식들이 많으면 들을 이야기도 많고 더 보듬어줘야 할 자식도 있을 거니까 그래서 그랬다고. 그렇게 이해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밖으로 나오는 눈물보다 속으로 흐르는 눈물이 더 많다. 순간 갑자기 숨쉬기가 귀찮다. 숨쉬기가 귀찮아지니까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사람들과 있는 것도 일하는 것도 귀찮다. 이럴 때 사람들은 삶을 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제부터 읽은 책이 그래도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학부모 동아리에서 읽을 책이라 숙제처럼 읽었다. 김새별 작가님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작품이다. 고인의 집을 청소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진솔하게 쓴 에세이다. 아픈 죽음들, 안타까운 죽음들, 외로운 죽음들이 너무 많다. 책에는 나보다 극한의 가난과 외로움을 겪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을 잡아줄 수 있는 한 사람, 한 마디의 위로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숨쉬기가 귀찮은 순간에 숨을 멈췄다. 나는 숨을 후 내뿜는다. 다시 공기를 들이마신다. 내 옆에 있는 진짜 내 가족, 남편과 아들과 소심하고 겁 많은 고양이가 나를 살리는 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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