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너의 의미
내 친구의 세례명은 스텔라다.
대학 입학하고 한 학기쯤 지난 후 스텔라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나에게도 스텔라에게도 함께 강의실을 옮겨 다니고 밥을 먹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자주 어울리진 않았다.
항상 크게 웃는 스텔라는 대학 생활을 아니 젊음을 맘껏 누리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범생이 스타일이다. 진짜로.
티셔츠 몇 장과 청바지 두어 벌을 유니폼처럼 입던 나와 달리 스텔라는 짧은 미니주름스커트에 희고 긴 나이키양말, 지금 그렇게 입어도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 잘해야 나이키마크랑 유사한 모양의 프로스펙스를 신던 나와 달리 선명한 나이키 상표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은 패션리더였다.
어쩌다 보니 우린 대학 졸업 무렵엔 꽤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내장산에 놀러 가기도 했고 화장품회사 다니는 오빠 덕분에 귀한 화장품 샘플을 나눠 주기도 했고, 혜화동 난다랑에서 이름 모를 소스에 찍어먹은 감자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는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사빠인 걸 내가 아는데, 이게 짝사랑인지 쌍방의 합작인지 알아야 했다. 혹시 혼자서 헛물켤지도 모르니, 함께 광릉수목원에 간 날 대놓고 친구가 좋아했던 그 남자에게 물었다. “내 친구랑 어떤 사이예요?”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걱정을 접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상대는 그 질문에 꽤 당황했었나 보다. 지금도 그때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말이다. 난 당당하게 스텔라 결혼엔 내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내 덕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에 이르렀으니 고마워하라고 강요한다.
결혼 날짜를 잡고 우연히 대학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이 철없는 목소리로 “너 결혼한다며? 뭐 하는 사람이냐?”라고 질문하자 그 친구는 “농사지어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이. 과장이나 미화없이, 솔직함. 그 남자는 정말 농사를 지었다. 다만 식물이 아니고 동물, 양계장을 무지무지 크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 친구랑 성향도 멋짐도 딱 맞는 천생연분인 두 사람은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로 현재진행형이다. 어찌나 죽이 잘 맞는 부부인지 다 내 덕분인 걸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스텔라의 장점은 사교성이 좋음이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가는 곳마다 인사만 하면 바로 지인 또는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화력을 가졌다. 남녀 불문, 노소 불문 인기녀가 바로 내 친구이다.
스텔라는 뭐든지 정해주는 여자이다. 넌 이 차에 타, 라든지 앞에 타, 뒤에 타, 내가 밥 살게 하면 그래 네가 사 또는 아냐 사지 마.
그럴 때마다 나는 의전 받는 기분이 들어서 그녀 말을 아주 잘 듣는다.
“거기 서봐..”
사진 찍기가 취미인 그녀 덕분에 숙맥인 내가 제법 포즈도 잡고 사진을 찍는 경지에 이른 것은 아주 큰 수확이다. 제법 예쁘게 표정 짓는 법도 배워서 인생샷도 여러 장 건졌다.
소중한 내 친구는 35,6년을 주부로 살다가 시니어 모델이 되었다. 친구는 무대 위에서 또 얼마나 멋지던지… 새로운 도전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몇 년을 모델로 활동하더니 금사빠답게 하고 싶은 거 해보았으니 되었네라며 다시 내 친구로 돌아와 전. 직. 모. 델이 되었다.
여전히 모델면모를 가진 베스트 드레서 친구와 백발 송송이 흰머리마저 멋진 친구남편, 이 부부와 우린 뷰맛집 북한강변에서 자주 만나곤 한다.
어제도 대성리역에서 나를 픽업한 후 갈치조림을 먹으러 은성가든으로 갔다. 그녀의 남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점심을 사줬고 우린(나와 인영이. 인영이는 다음에 쓸 계획인 친구다) 거절하지 않고 얻어먹었다.
우린 거절 같은 거 하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공짜를 무척 좋아하니까.
점심을 먹고 뷰맛집 라조리오에서 난 말차라테를 친구들은 오미자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물론 북한강뷰를 제일 많이 오래 먹으며 어김없이 수다에 수다를 더했다.
스텔라랑 세월이 흘러도 절친인 이유는 나를 존중해주고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만나던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린 서로를 무시하거나 질투해본 적이 없는 친구다. 서로에게 없는, 또는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사이. 내가 없는 건 돈(??)스텔라가 필요한 건 그냥 ‘ 나’인 그런 사이.
나와 나를 제일 잘 아는 나의 친구들,
이제 우린 함께 느리고 단순하고 평안하게 늙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