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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 Jul 02. 2022

고흐, 우아즈, 암스테르담

90일의 여행 #2

게스트하우스의 또래 스탭들과 함께 일하며 파리 생활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동갑내기 친구가 손님으로 체크인했다. 그는 파리에서 제과를 공부하는 유학생이었고, 미술과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당시 같은 스물셋이었지만 이미 프랑스가 눈에 훤했던 그 친구 덕분에, 스탭들과 함께 당일치기 근교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고흐가 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던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여행의 목적은 그의 유작이라 잘못 알려졌던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의 그 ‘밀밭’을 보기 위함이었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 앞, 드넓게 펼쳐진 가을의 밀밭을 보러.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 / 언덕길을 뛰어다니는 우리들

우아즈의 기차역부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건물들, 그리고 작품보다 먼저 눈으로 직접 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까지. ‘고흐’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을의 모든 게 다 각각의 그림처럼 보였다. 밀밭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은 내내 아름다웠고, 우리는 그 길을 자유로이 뛰어다녔다.


밀려있는 밀밭 (ㅠ) / 노부부의 빨간 차

그러나 도착한 언덕 위의 밀밭은 이미 모두 수확된 상태. 남김없이 싹 밀려있었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 밀린 밀밭 뷰의 공동묘지 주차장 벤치에 앉았다. 이미 저 멀리 마을로 내려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몰고 온 빨간 차 한 대와 우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그때 이 여행을 주도한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 여기서 춤추자, 음악 틀고.”


그렇게 우리는 공동묘지 앞 주차장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우리만 있는 곳에서, 모르는 노래들을 랜덤으로 틀고 말이다. 아, 그중 하나였던 무키무키만만수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는 기억이 난다. (혹시 궁금해서 위 링크를 누르시려거든  본인과 옆사람까지 놀라지 않게 소리를 줄이고 재생하시길 추천드린다.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후크송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공동묘지 앞에서 춤추고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웃기고 이상한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날의 경험은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 얽매어있던 어떤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주었다. 그저 느낌일 뿐이었대도 당시의 해방감은 처음 느낀 종류의 것이었다. 아니, 내가 해방감이란 걸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고흐와 테오의 무덤

막춤인지 몸짓인지 모를 것들이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췄다. 그러다 이곳이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함께 묻힌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들의 무덤 앞으로 갔다. 다른 이들의 무덤과는 달리 푸른 넝쿨이 가득 덮인 아름다운 무덤 앞에서 알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리곤 이 낯선 행복이 신이 사랑했던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온 내게 준 선물 같은 건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인정받지 못한 채 생을 마친 화가의 무덤 앞에서 감히 그랬다.


빈센트 반 고흐,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 (붓자국에 주목해보시라!)

사실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잘 몰랐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라는 것과 <해바라기>와 같은 유명한 그림들을 그렸다는 것 말고는 모르는 미술 문외한, 그게 나였다. 파리의 오르셰 갤러리 고흐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난 뒤에야 그가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오르셰 미술관에 걸린 그의 그림 속 수없이 덧칠된 붓 자국을 처음 봤을 때, 왜 그리도 눈물이 났는지 이제는 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 반 고흐의 방
The way to know life is to love many things삶을 아는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아를에서 머물던 작은 방, 형형색색의 자화상, 농부 가족의 저녁식사, 밤하늘의 빛나는 별, 태어난 조카에게 선물한 아몬드 나무 그림. 고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곳에 늘 시선을 두었다. 표현된 색채나 기법이 서글프고 차가울지언정 그의 내면을 닮은 따뜻함이 그림에 묻어있다.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그는 누구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을 사랑했고, 신이 허락한 자연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사랑했다. 어쩌면 당시 그가 빛을 보지 못했던 건, 누구도 담아내지 않았던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온 힘 다해 사랑했기 때문일지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엄 앞에서

3개월 간의 유럽 여행 중 고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아즈와 파리를 거쳐 그가 태어났던 도시인 암스테르담까지 다다랐다. 그렇게 곳곳에 묻어있던 그의 흔적들을 만난 것이 긴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면 그는 믿을까? 그림을 보고 우는 법을 알려준 이 고마운 화가에게, 스스로 보잘것없는 놈이라 말하는 당신이 마음에 품었던 것들이 오래도록 나와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난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I want them to say: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
.
I would like to show by my work
what this no body has in his heart.
이 보잘것없는 놈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

Your loving Vincent.
너의 사랑하는 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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