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북 Jul 17. 2024

행복의 정복

금주의 서평

 행복의 정복

짐승은 몸이 성하고 배가 부르면 행복하다. 흔히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 상태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간단하면서도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러셀의 명언은 늘 우리 주변 속에서 불행한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현대인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짐승에게 있어서 삶의 고민은 넉넉한 식량과 안전한 보금자리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과 동료들을 다른 짐승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현대 문명인들의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문명사회에서 의식주의 보장이 당연한 시민의 권리로 보장받는 지금 우리의 고민은 다른 것으로 변해있다. sns에 친구와 같이 놀러 간 사진을 올렸을 때 반응을 고민한다거나, 내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밤을 지새운다. 그런 고민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은 자신의 불행의 이유에 관해서 자신이 못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자신 스스로의 불행을 더 키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현대인들이 불행한 모습이 무엇이고 그 모습을 지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렇게 노력을 기울였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지 매우 논리적이고 간결한 글솜씨를 발휘해 독자들에게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책을 썼다는 러셀의 말에 처음에 의심 가는 눈초리로 바라보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의심의 눈초리는 자연스럽게 거두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은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제도의 구조적인 결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러셀은 이미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제도에 변혁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해 왔다. 그렇지만 부자들 자신이 불행하다면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는 러셀의 물음처럼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풍족함에도 행복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부자로 만드는 사회적인 변혁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회제도의 변혁은 구성원들의 오랜 시간적 합의를 동반해야 하기에 당장 곤경에 처하거나 불행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까지 고려해 본다면 결국 우리의 관심은 구조의 변혁보다 개인의 잘못된 심리적인 사고를 고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자신에 관한 과도한 집착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책에서 제시되는 죄의식이라는 문제와 경쟁 철학이라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가르쳐주셨던 도덕 규칙은 절대 어기면 안 되는 하나의 명령 같았다. 설상 시간이 흐르고 그러한 부모님의 도덕 규칙이 잘못된 규칙이라고 판명 날지라도 당시 우리에게 부모님의 규칙에 오류가 있다는 생각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따라서 부모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의 이치를 전부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들을 어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규칙들이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고 여전히 그 규칙을 어겼을 때 자신이 죄를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빠져있다면 당신은 죄의식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혹시 죄의식이 별로 큰 문제가 없다거나 그다지 중요한 문제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죄의식은 분명히 문제이다. 왜냐하면 죄의식은 잘못된 도덕 규칙에 근거하여 자신에 행복의 범위를 줄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죄의식을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도덕 규칙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합리적이지 않은 도덕 규칙에 근거해 살아가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합리적이지 않은 규칙이 비합리적인 사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동원하여 도덕적 순결이라는 감옥 속에 가둔다. 내가 생각하기에 죄의식은 근본적으로 타인이 제시한 잘못된 법률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규정하고 죄에 대해서 재판한 뒤 이에 대한 형별로 고독한 독방으로 밀어놓고 끝없이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도한 경쟁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상황

사람들에게 경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하나 같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먹고사는 게 보장된 사람들은 왜 경쟁에 참여하는가? 이들 대다수가 경쟁하는 이유는 남을 이기고 싶어서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경쟁 철학은 큰 문제를 발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이라는 문제는 개인의 잘못된 심리적인 문제를 빚어낼 수 있고,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면서까지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이는 처음에 남을 이기고 승리했다는 사실 때문에 성취감 젖어 행복해 있을 줄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 침전해 생각하다 보면 이번에 다른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한 마음을 수도 없이 담고 산다. 만약 이들이 경쟁에서 까지 패배했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자신을 경쟁에서 진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하거나 경쟁에서 이긴 승자를 나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비난할 거라는 사실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한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즉 과도한 경쟁은 지나친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고 한 개인을 위험한 상태로 놓이게 할 수 있다. 오로지 경쟁을 통해 성취감만을 느끼는 행위는 자신의 행복이라는 칩을 한 번에 거는 올인의 행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경쟁을 통한 성취감은 더할 나위 없는 승리감과 축복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승리감과 축복에 젖어있어 다른 부분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패배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 다가오는 엄청난 패배감과 굴욕감을 감당해 낼 방법이 없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성취감은 행복해지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방법에 매몰되어 있어 다른 행복해지는 방법을 키우지 않는다면 인생에서 성취감을 잃어버렸을 때 곧바로 불행의 늪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곧바로 절벽에 떨어질 위치에 놓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과도한 경쟁이라는 절벽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의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인생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늘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성취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나름의 낙관과 삶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이를 지나치게 하지 않게 도와줄 중용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문제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는 자기 사진을 너무 중요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잘못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해서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연구해 봤자 항상 나오는 결론은 똑같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둥 나는 못나게 태어났다는 둥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연구 결론을 내며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내가 보기엔 이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나의 행동이 그다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연구를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무수히 많은 별과 행성들이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인류의 존재가 작은 한 점의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나의 잘못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잘못을 항상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습관을 거두고 자신의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낙관적인 관점을 새롭게 얻어 삶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과도한 집착증을 보이던 사람은 컵에 있는 물을 쏟은 후에 자신이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비난받을까 두려워하며 자기 자신을 비판한다. 하지만 세상에 관해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를 다르게 인식할 것이다. 이들은 내가 컵을 쏟은 사실이 지구가 공전하지 못하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별문제가 없다는 듯이 쏟아진 물을 수건으로 닦을 것이다. 나의 존재를 너무 거대하게 바라보는 것은 절대 낙관적인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자신에 대한 집착을 키우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집착이 불행을 빚어내는 원인이라면 자신에 대한 중요성을 낮추고 드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와 위치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지 알게 되고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투가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심하게 된다.


양극단에 놓인 불행의 늪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간혹 열정을 잃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의 인생은 너무 허망하고 무기력함에 빠져있어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그 감정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삶을 관두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삶을 지속적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요인 중에 열정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러셀이 이야기했듯이 열정의 종류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열정을 쏟는 일이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열정을 쏟는 일수도 있다. 사람마다 열정의 종류는 모두 다르지만, 열정이 주는 힘은 모두 같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뭔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지친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은 간혹 너무 지나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영화를 감상한다는 일이나 가족을 부양하는 처지임에도 축구 경기를 보러 다닌다는 사실은 열정이 너무 과도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삶에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들만큼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열정을 너무 과도하게 쏟는 행위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한 가지 욕망만 지나치게 추구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한 가지 자극에 이끌려 다른 중요한 것들을 내팽개친다면 삶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질 것이고 언젠가 삶의 균열이 일어나 큰 난처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영화를 보던 사람은 시력을 잃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영원히 바라보지 못할 수 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축구를 보러 간 사람은 응급실에서 보호자가 없는 상태로 진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을 비추어볼 때 우리는 인생에서 다양한 부분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중용철학이 필요하다. 열정이 하나도 없어서 삶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열정이 너무 넘쳐나 자신에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몰입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결국 우리는 그 중간 사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양극단에 위치한 불행의 늪을 피해 가는 것도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소감 및 평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자주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지금 나의 유년 시절을 돌이켜 본다면 그런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어른들은 내 주변에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러셀의 책은 어른들이 답하지 못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해 준 책이면서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러셀은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행복을 얻는 방법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다양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남은 인생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실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