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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May 01. 2023

나를 닮은 이름

바꾸지 못한 이름


돌림자가 선 (善), 아들 없이 선희, 선자를 이은 선옥이라는 이름을 짓는데 나의 부모님은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셨을까? 묻지는 못했지만 반나절을 넘기지 않았을 터다. 어느 정도는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 같아 귀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선옥이라는 이름은 받침으로 니은과 기역이 마주하니 발음하기 곤혹스럽다. 혀뿌리부터 입술까지 힘을 주는 불편함이 싫다. 봄볕을 쬐는 병아리 깃털 같이, 부르면 입술 끝이 발랄한 그런 이름이었으면 좋았겠다.

 이름에도 나름대로의 이미지가 입혀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 이름은 평범하나 고요한 근성이 있는 이미지 같다. 나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풍기고 싶다. 하지만 선옥이라는 이름은 마치 블라우스에는 반드시 정장 구두를 신는 사람 같다. 한껏 여성스러운 상의에 운동화를 신어도 세련된, 그런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것  같다. 약간은 갑갑하고 진부한 사람의 이미지랄까? 그런 이유로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 역술원 탐방을 한 적이 있었다. 재미 삼아본 것이지만 역술원의 점괘가 꽤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내 사주와 이름을 대입해 보면 자수성가해야 할 팔자이며 남을 잘되게 해 주나 그 덕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이룬 '자수성가'이니 나머지 점괘가 틀린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유명한 역술인 몇 명을 더 만나고 얻은 결론은 선옥이라는 이름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들 모두 이름을 바꾸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름 때문인가?” “엄마, 아빠, 이름이라도 잘 지어주시지 그랬어요!"라는 넋두리를 자주 하게 됐다. 잘 풀리지 않던 인생의 매듭들이 모두 이름 때문인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자연스레 이름을 바꾸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게 됐다. 새로운 이름은 부르기 쉽고 가볍지 않아야 하며 사주팔자에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다소 까다로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이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은채, 찬비, 영은, 지수, 서은, 등등……. 리스트를 만들어 뜻 좋은 한자를 대입시킨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명소에 가져가 좋다는 이름을 하사받게 되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런데 내 이름은 아직 선옥이다. 팔자가 꼬였다는데도, 심지어 단돈 몇 만 원이면 바꿀 수 있는데도 말이다. 거울속의 나를 낯선 이름으로 불러 봤다. 간지럽고 민망했다. 공짜로 주는 명품 옷이라도 옷도 내 몸에 맞아야 입을 수 있는 법.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익숙한 편안함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수많은 명단 속에서도 형광색을 입힌 듯이 눈에 들어온다. “하는 한 음절만 들려도 몸이 절로 일으켜진다게다가 성공한 동명이인은 왜 이리 자랑스러운지…….

 

봄꽃을 떨구는 빗소리가 타닥거리면 아랫목에 배를 깔고 책을 보던 때가 기억난다돌아가신 부모님이 한숨처럼 부르시던 그때의선옥아!”는 낡은 수건처럼 익숙하고 부드럽다그래서 편리함에 그리움을 얹어서 붙잡고 있었나보다그런 걸 보면 나란 사람은 선옥이란 이름과 많이 닮았다는 걸 인정해야겠다진부하지만 곧고곧으나 재미없는 나와 같은 결이다그렇다고 이름을 바꾸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얼마쯤 앞선 미래의 나는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삶과 감정의 뾰족함에 유연한사람이 되고 싶다바로 그때에 나를 닮은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그리고 그 이름의 이미지는 마음이 촉촉하고 세련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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