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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an 15. 2024

나는 친절한 방관자였다.

직장에서의 내 모습



 56세는 상대에 따라 상당히 많은 나이로, 아니면 아직은 창창하다고 여겨질 만한 나이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중인데, 그건 몇 개월 전에 다분히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는 생태계를 택한 탓인 것 같다.

운이 좋게도 이 나이에 처음으로 공공기관에 취업하게 됐다. 내가 입사한 기관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신입으로 채용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계약직이어도 말이다. 운이 좋았다. 비록 업무 내용이 빡세서 며칠 만에 그만둔 사람이 부지기수 고, 그 자리를 선뜻 맡겠다고 한 사람이 나뿐이었던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 기관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이에 대한 열등감이 전혀 없었고, 업무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뜬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딘 직장이라는 공간은 냉랭한 공기 사이로 친절한 말들이 떠다니는 곳이었다. 차분한 말씨와 친절한 태도로 응대해 주었지만, 표정과 행동은 나를 배척하는 중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내 책상위에 놓여있던, 글자가 엄지손톱만 하게 출력된 매뉴얼을 어이없어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직원이 “안 보이실까 봐 크게 뽑았는데, 잘 보이시죠?”라고 했다.

나는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 그런지 시력이 아주 좋아요. 경로우대는 안 해주셔도 돼요.”라고, 말하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정확히는 웃는 척을 한 것이다. 새로운 직장동료가 오십 대 중반이라는 것은 유쾌하고 열정적인 새 동료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결코 환영받을 만한 사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순간에 점심을 혼자 먹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맡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인지를 염려하기보다 사람들로부터 내쳐지는 것을 가장 먼저 걱정하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 순간에 이 조직 안에서의 나의 포지션이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내 경우는 나이를 먹고 낯이 많이 두꺼워졌다. 이제 더 이상 이삼십 때처럼 작은 지적만 받아도 눈물 바람 하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망해서 질문하지 못했던 나도, 알쏭달쏭한 디스 전에 의기소침했던 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묻고 호기롭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더해서 좀 더 존재감 있는 간식거리가 없는지를 고민하고 사다 바치기 시작했다. 연거푸 간식이나 커피를 대접해도 불만이 없었다. MZ세대 동료가 또래에게는 꼬박꼬박 되갚으면서 내가 베푼 것에는 입을 닦아 버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주로 경청하면서 기꺼이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포용력 있는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 공간에서, 나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인식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유치로 인해 나와 같은 연배의 S가 편입하게 되면서, 내가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S는 예의바르고 진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업무를 파악하는 데에, 열중하면서 주변 동료직원 들과는 말을 많이 섞지 않는 것이다. 묻는 말에, 단 답 정도는 아니지만 간단하게만 대답을 했다. 분위기 상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신중한 편으로 보였다. 직원식당에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권유에도 정중히 거절하며 직접 가지고 온 차를 혼자 빈사무실에서 마시는 거다. 나는 그런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어 보였다. 

내 경우에는 사람들 속에 얼른 편입하고 싶은 마음에 딱히 내키지 않은 일을 참아가며 했었으니 말이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여도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주눅들보이지도 않았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업무 시스템에 대해 알려주자 진심으로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변잡기 같은 얘기를 건네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니까 그녀는 좋은 사람이지만 친하지 않은 동료였던 거다. 그래도 내 눈엔 소신 있는 사람으로 보여서 언젠가는 가깝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다 제 각각이라더니 S에 대한 나의 관점과는 다른 질감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도와주지 않는 다”, “여러 번 가르쳐 준걸 또 물어본다.”며 나와 가장 친한 동료 K가 S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S는 그렇지 않았다. 책임감 있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단지 조금 천천히 가는 사람일 뿐. K는 아마 가장 바쁘고 일 많기로 유명한 자신의 사업을 S가 한 번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던건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던데요. 가르쳐 주면 잘 알아듣고, 또 엄연히 맡은 업무가 다른데 눈치껏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아직 S도 업무파악을 하느라 정신없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늘 같이 웃고 떠들던 동료에게, 너무 날이 선 반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몇몇 친한 동료들이 모이기만 하면 항상 S의 단점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의사표현 없이 듣는 태도 역시, 수긍의 의미로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됐다.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S에 대한 험담을 더 자주, 그리고 더 강도 있는 내용으로 풀어놓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우려일 것이다.

처음 K가 S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 적절하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제 와서 입을 열어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나도 엄연히 같은 대열에 합류했던 사람으로 생각될 테니.


 나는 사직서를 낼 생각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애당초 어떠한 절실함도 없던 아직은 쓸 만한 사람이라는 증명을 위한 취업이었기 때문이다. 사직서는 그 모든 것에 대한 반성이다. 나는 이 조직 안에서 처음 느꼈던, 차가운 온도의 친절이 두려웠다. 그랬던 내가 S에게 친절한 방관자가 되어 버렸다. 겉으로는 친절하게 말하면서 뒤에서는 험담하는 것을 묵과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것만큼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이지 나잇값을 못 하고 말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공간에서 단 한 번도 나다운 모습으로 자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부끄럽게도 나는 도망가는 사람이 됐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의 시간이 좁고 가파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얼마 안 가서 그들은 금세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고, 나는 어떤 종류의 조직에 속하게 될지라도, 섣부른 나잇값 따위는 시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제 단단해지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단단함’의 의미로. 꿈적하지 않기 위해 딱딱해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또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 안에서부터 근육을 만들어갈 것이다. 말랑한 겉 표면이  다소 눌려진다 해도 내 중심의 근력으로 튕겨지는 탄성, 그런 단단함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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