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회사에서 힘들었던 점과 열 받았었던 이야기는 많이 말씀드렸는데 정작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말씀드린 적이 없어 이번 글과 다음 글은 제가 주로 하는 일과 어떻게 일을 하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사업을 개발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 했던 희한한 일이 많이 생기는구나 정도를 느끼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전문용어가 나올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따로 연락 주시고요.
첫 번째로 말씀드릴 일은 중동지역에 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하는 사업입니다.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는데 정해진 일정 안에 사업을 완성해야만 하는 발주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발주처 본인들이 애초에 계획한 일정 안에 발전소를 건설하지 못하면 사업을 없애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죠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했는데 은행이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지라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발주처가 요구하는대로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공사를 바로 시작한다면 회사가 공사비를 다 부담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회사는 계획보다 재무적으로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공사를 시작할 수도, 공사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업이 없어지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공사비 중 일부를 내고 그 돈을 다 쓰기 전에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계획으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빌려야 하는 은행하고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았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은행이 까다롭게 나오기 시작하면 조건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성과 없이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있었고 결국 회사가 낸 돈을 공사비로 다 써버리게 되었습니다.
공사비로 줘야 할 돈을 못 주고 보니 공사업체는 밀린 돈 빨리 안 주면 공사를 그만하겠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클레임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때 공사를 멈추면 앞서 얘기한 발주처의 일정을 못 맞추는 상황이고 공사대금을 주자니 은행 하고는 합의가 되지 않아 돈을 빌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회사에서 돈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은,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공사할 돈을 준다는 약속을 할 테니 공사를 계속하라고 공사업체와 얘기를 시작했고 다행히도 공사업체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공사를 멈추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회사에서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문서를 발행해야 되는데 회사 법무팀에서 그 약속은 회사가 전체 공사금액에 대해 보증을 선다는 뜻이기 때문에 문서가 나갈 수 없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만약 그대로 공사대금 지급을 약속하는 문서를 발행하면 회사는 공사금액 전체에 대해 보증한다는 공시를 하고 나서 보증한 공사대금을 회사의 부채로 인식해야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갑자기 회사 부채비율이 크게 증가하게 되고 부채비율과 연결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원부서는 그런 일만은 막자는 의견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그 사업의 담당이었기 때문에 지원부서와 계속 협의(협의라 쓰고 깨진다고 읽어야 함)하면서 결국 수정된 문구로 문서를 발송할 수 있었고 첫 번째는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했습니다.
은행하고 협의 과정에서 이제는 정부부처까지 포함해서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전보다 일이 진행이 더 느려졌고 돈 빌리는 일이 자꾸 지연되다 보니 공사비를 주기로 약속하는 문서를 몇 개를 더 보내야 했습니다.
공사업체도 계속 돈을 못 받다 보니까 그런 문서를 요구할 때마다 공사대금을 약속하는 문구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었는데 예를 들면 처음에는 ‘주는 것을 검토한다’ 정도였다가 마지막에는 ‘반드시 주기로 한다’로 수준까지 올라왔죠.
그때마다 점점 높아지는 문구로 여기저기 승인을 받으러 돌아다녔는데 당연히 지원부서와 회의를 할 때마다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었지만 솔직히 그때는 관리부서한테 욕 얻어먹는 것보다 사업을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바짝바짝 말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만 더 이렇게 하면 죽겠다 싶을 시점에 은행과 극적으로 합의가 되어 마침내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돈걱정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업을 완성했다 기쁨도 있었지만 더 이상 사업이 망가질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정말로 감사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사업은 개발할 때는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막상 완성되고 난 뒤에는 회사에서 돈 제일 잘 버는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사업을 성공해보면서 내 나름대로 자신감도 생겼고 그때 경험으로 은행의 시각에서 사업의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원부서는 어떤 부분들을 주로 걱정하는지 알게 된 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 사업이 끝내고 다음 사업을 맡았는데 두 번째 사업은 처음 사업보다 난이도가 더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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