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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회사의 마지막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저에 대한 평가와 내가 모회사에 남을지 자회사로 갈지가 결정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고도 안치고 잘 지낸 데다가 나름 일도 괜찮게 한다는 평가도 받았었던 터라 웬만하면 남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팀장이 면담을 하자고 하더군요.

시기가 시기인만큼 먼가 느낌이 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원래 회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내가 있던 회사의 인사책임자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새로운 인사책임자에게 제 상황을 얘기하자 '난 전에 있었던 사람이 했던 약속은 모르겠고 파견기간 끝났으면 무조건 돌아와야 한다'라고 통보했다고 하더군요.

그 회사에 있는 몇몇 사람하고 같이 못 있겠다고 퇴사하는 사람을 붙잡아서 여기로 보내더니 이제 와서 다시 그 회사로 돌아오라는 건 무슨 말도 안 되는 통보인가 싶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진즉 합격한 회사를 가는 게 낫지 모회사로 옮겨주겠다는 약속 하나 믿고 최종 합격한 회사에 못 가겠다고 얘기하면서 그 회사에 두 번 다시 발도 못 붙이는 게 된 것은 물론이고 전에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이상한 욕은 다 듣고 모회사로 왔는데 이렇게 돌아가게 되면 내가 아주 이상해지겠더라고요.


하도 어이가 없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안 돼서 한동안 멍하니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팀장을 봤더니 이 사람도 회사 방침은 따라야 하는데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긴 싫어 나보고 돌아가라는 말도 못 하고 앉아서 내가 ‘알겠다 돌아가겠다’는 말을 기다리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내가 여기서 돌아가기 싫다고 해도 상황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남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지쳐서 알겠다고 하고 면담을 끝냈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쯤 뒤에 돌아갈 회사의 인사팀장과 만나서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가 ‘어느 팀으로 가고 싶냐’고 묻길래 서로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이전 팀장 밑으로 가면 나 스스로도 그 팀장과 잘 지낼 자신이 없었고 그 영향으로 일도 안 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전 팀장이 있는 팀은 가급적 제외시켜라고 했고 그 인사팀장도 내가 회사를 나가려고 했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알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갈 날이 되었는데 정말 웃기게도 전에 있었던 팀장 밑으로 복귀 발령이 나더군요.

인사팀장에게 나하고 약속하고서 어떻게 이렇게 발령을 낸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다른 팀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그 팀에 있던 사람이 자꾸 나가는 데다가 그 팀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팀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위에 계신 양반들이 그 팀으로 보내라고 지시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던데… 머 솔직히 이때부터는 머라고 얘기를 하던지 그냥 어이가 없고 웃기기만 했어요.

어떻게든 제발 피해달라고 부탁한 그 팀으로 가서 일 하라는 그지 같은 발령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서 회사 나가라는 표현으로 밖에 안 보였고요.


그래도 당장 방법이 없어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퇴사한다던 사람이 모회사에 파견을 가더니 무슨 백으로 회사를 바꾸네마네 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 걸 보고 수군거리고 뒷담화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믿고 정 붙이려고 했었던 회사에서 이런 머 같은 상황을 겪게 되니까 차라리 다른 회사 합격했을 때 그만두었어야 했나 후회도 많이 했고 회사 내부 사정이나 회사 생활의 생리에 무지해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정말 반성 많이 했었습니다.


뾰족한 대안도 없이 우울하게 회사를 다니던 중에 모회사로 옮기기 전, 이직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시기에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점에 이직할 기회가 온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했고 이직하려는 회사가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큰 회사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었죠.

참고로 이때 퇴사 통보는 팀장을 배려해서 목요일 오후에 얘기했습니다.

그 당시 팀장도 말리지도 않고 인사팀 역시 그 어떤 대안을 제시하거나 나가지 않을 방법에 대해도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역시 이 회사는 내가 나가기를 바랐구나’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별다른 문제없이 퇴직처리가 되어 놀고 있었는데 그 회사가 다시 한번 제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어주더군요.

모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이 연락이 와서 얘기하길

"그 회사가 너한테 이상한 짓 해서 너 그만둔다는 얘기는 들었다. 근데 다니던 회사에서 너 그만둔다고 할 때 다시 큰 회사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다던데 정말이냐? 여기 다시 오면 좋은데 왜 거절해?"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다가 인사담당자뿐만 아니라 그 누구로부터 그런 얘기 절대 없었다고 전화를 끊으면서 정말 이 회사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던 자기 면피할 생각만 하는 곳이라 생각했었죠.


회사라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는 일을 하는 사람을 무엇보다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이 어떤 이유가 되었던지 본인을 헐뜯거나 모함하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런 취급을 받는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일로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이 그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두 번 다시 그 회사를 생각하기 싫어한다면, 당연히 회사에서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문화가 없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본인들 필요로 조장하기까지 한다면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본인들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를 말아먹고 계신다는 신호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회사생활#복귀#퇴사#정나미#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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