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와 무너진 순간

몸이 보내는 신호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신호

by 경리언니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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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감사 시즌이 되면 회사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료를 정리하고 숫자를 맞추고 계정을 다시 확인한다.

작은 숫자 하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회계 일을 하는 사람에게 외부감사는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다. 회사에서 만든 숫자를 다른 사람이 하나씩 들여다보는 시간.


팀장이 된 이후 외부감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료 요청이 오면 내가 정리해야 했고 숫자에 대한 질문이 오면 내가 설명해야 했다.

"이 계정 설명 가능할까요." "이 숫자는 왜 이렇게 나왔나요."

그 질문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이어졌다.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 설명이 부족하면 안 된다는 생각.

그 압박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외부감사 기간이 되면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누워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숫자가 떠다녔다. 계정별 잔액. 결산 조정. 자료 요청 목록.

눈을 감아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겨우 잠이 들어도 새벽에 다시 깼다.

아침이 되면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을까?

회사 숫자는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결산도 외부감사도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 숫자는 완벽했지만,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회사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출근길이 조금씩 버거워졌다.

사람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회사가 미워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자." "이번 감사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나 자신을 계속 설득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몸이 먼저 멈춰버렸다.

그때 알았다.

버티는 것이 항상 강한 것은 아니라는 걸. 몸이 보내는 신호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신호였다는 걸.


경리언니 찐나의 다독임


지금 이 글이 조금이라도 익숙하게 느껴지셨다면 당신도 오래 버텨온 사람일 겁니다.

버티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도 됩니다.

멈추는 것이 포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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