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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앙 Jun 14. 2021

성장, 통과의례

해님달님 이야기를 읽고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고혜경/한겨레> 읽으며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가 해님달님 편을 보면서 정신이 반짝 들었다. 해님달님 이야기는 작가의 해석에 따르면 성장의 통과의례라고.


어릴 때  엄마는 빠듯한 살림에 망설이다가 옛이야기 그림책 10권을 사주었다. 정말 읽고 또 읽은 그림책에 해님달님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무섭고 슬펐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던 호랑이는 끝내 엄마를 잡아먹는다. 그것도 차례차례 팔 하나 다리 하나 이런 식으로.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오두막으로 온다. 동생은 문을 열어주고 누나와 동생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간다.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오르다 수수밭으로 떨어져 죽는다. 하늘로 올라간 누나와 동생은 해와 달이 된다. 처음엔 동생이 달이었으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서 해가 되었다고. 어릴 때 나는 특히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엄마도 죽었으니 좀 행복해져도 되지 않나. 하늘의 해와 달이 되어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 싫어하며 산다는 건 너무 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누이에 나를 투여하고 있기는 했나 보다. 독립의 길은 험난하고 독립해도 좋은 일들은 많지 않다.  동아줄을 오르는 통과의례를 거쳐서 독립을 한다는 것에 삽시간에 지금 나와 아이들의 관계가 이해가 된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져주지만 그러나 자식의 독립은 아이들 스스로 동아줄을 올라야 한다.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거쳐 해로 살거나 달로 사는 건 아이들의 몫이다. 대신해 줄 수 없다.

스무살을 넘어서며 나는 통과의례를 혹독하게 겪었고 서운했으나 어느 순간에 서운함을 넘어서야 했다. 첫째였던 나와 부모님에게 그 통과의례는 겪어보지 못했던 서운함이었다.

엄마는 서운함을 풀어드릴 새 없이 돌아가셨고 늘 하늘 같던 아빠는 나이 들며  돌보아드려야 할 어린아이처럼 쇠약해지셔서  서운하다고 느꼈던 일들이 더 슬퍼졌다.


오늘은 길고양이들 밥을 주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다 옆동네 캣맘을 처음 만났다. 옆동네 캣맘은 잠시 나를 경계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밥을 주고 있다고 하니 아하 한다. 내가 밥 주는 애들을 본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예쁘더라고. 그 말에 기분이 으쓱한다. 여름이면 모기 때문에 겨울이면 추위에 시달리는 그 애들 때문에 늘 맘 졸이며 살면서 그런 작은 순간들이 나를 위로해준다.


그러나 그렇게 예쁜 길고양이들도 새끼 때 애지중지하던 애들을 독립시킬 때는 야멸차다 못해 찬바람이 쌩쌩 분다.

한 마리 배가 불룩한 듯해서 살짝 걱정인데 새끼들이 태어나서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새끼들은 반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겨우 한 두 마리가 남는다. 그것도 가슴 아픈데 새끼들이 크면  어미의 영역을 빼앗고 어미는 어디론가 쫓겨 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밥을 주게 된 것도  밥이 있으면 영역다툼이 조금은 느슨해지고 어미가 쫓겨나거나 떠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자식들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피자를 시키는 아들에게 콜레스테롤을 걱정하고

에어컨을 켠 딸에게 환기구를 열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것도 한 마디뿐이지만.  

피자를 먹고 자는 불룩한 아들의 배도 걱정이고

자꾸 기침을 하는 딸애의 폐도 걱정스러운데 말은 하지 못한다.


아들도 딸도 동아줄을 려면 시간이 걸릴 터이다.

그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야겠지. 그러고 보면 호랑이도 필요한 존재였다.


토요일. 일요일을 거의 밥을 차리지 않고 간단히 먹으면서 주말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이 내게 느끼는 서운함이 풀어지거나 서운함이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그것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할 거 같다.


떡 하나 주면서 잡아 먹히지만 않는다면 살아있기만 하다면 자식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염원을 놓지 않던 엄마.

엄마의 사랑을 느끼면서 아빠의 사랑을 느끼면서 그렇게 컸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왜 그렇게 서운하고 야속하기만 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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