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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책방 Apr 09. 2023

<돌봄과 작업> 생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

당신의 감정은 옳아요.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요.

돌보는 사람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살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돌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며 헌신하는 일은 자신을 먼저 건강히 돌보는 시간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든 과정'이라고 아무도 얘기해 주는 이 없었기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생활 감수성만 뛰어난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여성이 온 마음을 모아 이야기하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힘듦을 이곳에 기록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과정을 거쳐 '돌봄과 작업'의 균형 잡기에 온 힘을 쏟은 후, 어느 정도 긴 터널을 통과했다 생각하니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욕망을 모두 상실한 내 삶'이라는 것임을 기록하고 싶다. 단지 직장이 있고 돈을 벌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너무 긴 시간 아이와 나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삶이라는 것을 허공에 뿌려놓고 살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지금 애도 키우면서 벌이도 너무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랬기에 그동안 아이를 키우는 것에 몰두하며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오는 생활을 문제 없이 해냈다. 감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직장'이 아닌 '직업'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기 때문이다. 이 직장을 나가는 순간 나에게는 '업'도 없어지고 '돈'도 없어지고 심지어 '욕망'도 없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만 돌보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에 공허함이 찾아온다.


얼마 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달가량을 육아에 전념한 적이 있었다. 오로지 육아만, 아이들만 생각하며 몸만 회사를 오가는 삶을 살다가 육아 번아웃이 왔다. 무기력, 우울, 피곤함. 툭하면 눈물이 나고 기분이 계속 처지기 시작했다. '욕망이 불균형한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정말이지 나에게서 많은 종류의 '로망(roman, 낭만)'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건, 의식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은 날이다. 오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날 나는 의도치 않게 마음 깊은 곳에 묵혀둔 이야기를 친구에게 꺼냈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내 삶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채 '돌보는 사람'으로써 너무 오랜 시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지속적으로 해법을 찾고 싶어 진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지금의 감정을 글로 적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조금씩 확보하는 것 밖에는. '당신의 감정은 옳아요.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요'라는 위로의 말을 책을 통해 듣는 것 밖에는. 그렇게 나 또한 아이를 돌보는 일과 내 것을 만드는 일 사이에서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장하는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직감하며 사는 것 밖에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나에게 최선의 삶임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육아의 서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일과 육아에 모두 성공했다는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 사실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롤모델도 아니고 타인의 위로도 아니고 스스로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비록 조금은 자기기만적일지라도 스스로와 연대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마음이 다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잘 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 모순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안 그래도 (엄마라는 이유로) 비난받을 일투성이인 세상에서 나까지 나를 비난한다면 어찌 견대겠는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무엇을 권유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닌데도 거의 십계명 수준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낸 게 아닌가 싶다. 다소 민망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이 글에서도 절대 해법을 찾으려 애쓰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드시길. 바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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