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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책방 Mar 15. 2023

<나의 문구 여행기>

큰 경험에 집착하지 않고, 작은 경험부터 차곡차곡 모으기로 한다.

사실 요즘 기록하는 일에 푹 빠져있다.

처음에는 책을 읽다가 영감 받은 글을 적으려고 했고,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도 함께 적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의 생각을 일기처럼 쓰기에 이르렀다.

북스타그램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도대체 언제 회사 가고 애보고 집안일하고 책도 읽냐고 묻길래, 글쎄, 시간이 허락해서 하는 거지 내가 계획한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 날 답을 해주지 못했다. 나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기록해 볼까. 하루를 먼저 계획하고 실천을 하는 기록이 아닌, 시간을 보낸 후 나의 하루를 되짚어보는 기록을 시작했다. 아하~ 나는 시간을 이렇게 쓰는구나~ 부끄럽지만 그제야 알게 된 사실.

이런저런 기록을 하다 보니 노트며 펜이며, 40 평생 관심도 없던 물건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날로 피드를 하나 더 만들어 기록광들이 보통 어떤 노트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아날로그 키퍼"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사진 귀퉁이를 장식하는 아담하고 담백한 문구류. 나는 또 다른 물건들을 구경할 심상으로 그녀의 인스타를 찾아 들어갔지만, 예기치 않게도 그녀의 글에 매료되 홀린 듯 노트며 인덱스, 생전 써보지도 않은 클립까지 전부 구매하고야 말았다.

물건에 깃든 그녀의 철학까지 훔치고 싶어 그녀가 쓴 책 <나의 문구 여행기>를 읽게 되었고, 그녀의 '머묾'에 동참한 기분이 들어 참 좋았다.

그녀가 만든 문구에 한 땀 한 땀 나를 기록한다는 것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는 좀 더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한 행위라 생각이 든다.

오늘 출근길 나의 가방에는 작은 책 한 권과 그보다 더 작은 다이어리, 그리고 펜과 연필이 담긴 필통이 있다는 사실. 갑자기 뭔가 떠오르면 핸드폰을 꺼내던 내가 다이어리와 연필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는 것이, 별것도 아닌데 참 좋다.


그럼에도 계속 써야 한다면 그 이유는 쓰기란 나를 궁금해하는 일이기 때문일 거예요. 나의 구석구석을 궁금해하는 일. 사랑이에요. 내 삶을 장편으로 펼쳐 순간순간마다 이름표를 붙여두고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지름길을 내는 일. 그 길목에 가로등을 세우고, 꽃을 심고 가꾸며 나만 아는 비밀 공간을 짓는 일. 그 공간에 생기는 힘을 우리는 내력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내 안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힘. 그래서 어느 순간 나보다 미리 도착해 있는 힘.

- 아날로그 키퍼 인스타 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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