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에서 건강 관리를 해보겠다고 선언한 지 꼬박 3주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커피를 줄였고 혼술을 끊었다. (혼술만 끊었지 함께하는 술은 마셨다. 기록을 들쳐보니 주 3회는 마셨더라) 저녁도 조금 줄였지만 그만큼 낮에 간식을 자주 먹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냐고 묻는다면 내 몸에는 아무 변화가 오지 않았다.(당연하지)
정신적인 변화는 왔다. 요즘 같은 날씨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낭만을 잃었고, 혼자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빼앗기다 보니 정신이 황량해졌다. 그러니까 아이 둘 키우며 매일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 40대 아줌마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이라고는 딱 이 정도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커피가 뭐라고, 혼술이 뭐라고. 그것보다 더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음에 나도 나이가 드는 건가 싶어 우울감이 몰려온다.
아.... 술땡긴다.
건강 관리를 하겠다고 선언한 후 일주일 만에 부서 내 회식이 있었다. 그날은 함께 일하던 부장님의 일본 주재 발령 송별 파티를 하는 날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나이 40에 회사생활 17년을 했음에도 여자 중에 막내다.) 바쁜 업무를 제쳐두고 근무시간 중 백화점에 가서 선물도 사고, 회식 장소도 알아보고 인원수를 체크하고 예약도 하는 등 한 번도 안 해본 짓들을 그날을 위해 열심히도 했다. 몸을 움직인 만큼 마음도 참 많이 쓰였는데, 사실 일본으로 가시는 부장님과 기나긴 인연이 있었기에 기꺼이 도맡아 준비한 것도 있었다.
비록 건강 관리를 하겠다고 커피와 술을 줄였지만, 그날만큼은 그냥 마시자는 생각으로 회식 장소에 갔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시기 시작한 나는 결론만 말하면 1차 막바지부터 필름이 끊겼다. 간간히 생각난 장면은 2차로 가는 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 누군가에게 심히 의지했다는 것과, 2차에서 주재로 나가가시는 부장님께 술을 오지게 먹였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후 3일간 숙취로 고생했다.
조심스럽게 다음날 상준이(친한 후배)에게 그날의 정황을 물어보니 아주 난리다.
"누나 그날 태욱이 형한테 안겨서 2차 가던데?"
간간히 생각난 장면, 누군가에게 심히 의지했던 기억. 그 기억은 정확히 맞았지만 의지한 수준이 과했다.
"내가? 미쳤네~ 왜 그랬데?"
"외로웠나보지~"
"젠장, 왜 태욱이었니~?"
"많이 외로웠나보지~"
일본으로 주재 가시는 부장님의 송별을 정말이지 찐하게 하고 싶었나 보구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런 것도 다 재미지 하며 억지를 부리기도. 단지 고삐를 1주일 쥐고 있었는데 그걸 잠시 풀고 나니 나는 이렇게 막무가내구나 싶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 노잼 시기를 어찌해야 할까. 단지 커피와 술을 줄였다고 이렇게까지 재미없는 삶이라 치부하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 결국 나도 내가 어릴 때 봐왔던 어른들의 정형화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진부해진다. 3주 동안 정체된 몸무게를 움직이는 방법은 어쩌면 식단 관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건강일지가 잘 마무리될지 벌써부터 미지수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르는 건 그 일의 가치 역시 크다는 뜻일 게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누릴 수 있는 귀함이 그 어려움 뒤에 온다는 걸 믿어야 한다. <고요한 포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