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Jul 21. 2024

<기묘한 골동품 서점> 런던 고서점 - 올리버 다크셔

출판사에서 이 반짝이는 책을 받았다. 제목의 골동품과 어울리지 않은 광택 넘치는 표지의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서점이 이런 느낌일까? 책으로 둘러싸인 직장이라. 어쩐지 행복할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특유의 냄새가 있을 것 같고, 먼지가 날아다닐 것 같은 소서런 고서점에 수습 직원으로 들어온다. 키가 크고 현재는 남편과 함께 맨체스터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여성분인 줄 알았다. 책의 말미에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말한다. 처음에 양복을 입고 다녔다고 하고, 중간에도 넥타이를 휘날리며 다녔다는 말이 있어 옷차림이 독특한 여성이라고 여겼다.


책과 함께 생활하는 저자이지만 책과 관계된 일보다 아닌 일이 더 많다고 고백한다. 독특한 고객을 상대하는 일부터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전화 통화, 북러너(지역을 다니며 헌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사람들)에게서 책을 구입하느라 실랑이를 벌이는 일 등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크립티드(미확인 생명체)들도 만난다.


1761년 개업한 소서런 고서점은 오래된 책을 다루는 만큼이나 오래된 물건이나 가구들이 많다. 장소를 옮긴 적은 있었지만 수십 년째 지하 보관소에서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책들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라면 귀한 장서로 장갑을 끼고 들어가 읽어야 할 만큼 귀하게 다루어질지 모르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서점 직원에게 책은 잠시 보관하고 있는 물품일 뿐이다. 물론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은 언젠가 헐값으로 다른 책들과 함께 팔려나갈지도 모른다. 불태워지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비염 있는 사람은 근무하기 힘들 것 같은 고서점에서 저자는 수습으로 들어와 가게 열쇠를 쥐게 될 때까지 성심을 다해 일한다. 가방 끈이 짧은 것을 한탄하던 저자는 근처에 있던 블룸스버리 영어연구소에서 ‘서적사’ 석사학위를 받는다. 조용한 중에 자기도 모르게 잠드는 기면증이 있는 저자는 맨체스터에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 책 이후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에 파묻혀 살았던 몇 년 동안 책이 그를 저자로 키운 것일까?


이 책에는 독특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런던과 고서적 판매상이라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의 나열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손자와 런던 냄새 투어를 다닌다는 한 여성의 등장에 웃음이 피식 나기도 했다. 무언가 고리타분할 것 같은 그곳은 이제 SNS를 비롯한 컴퓨터 작업과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새로 들어온 레베카가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다. 포커 카드로 만든 집과 같이 위태하다는 고서적 판매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AI가 보급된 미래에도 살아남을까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책을 너무나 좋아해 희귀 서적도 수집하는 한 분을 떠올렸다. 그분은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을 것 같다. 언젠가 영국 런던에 가게 된다면 새크빌 스트리트의 소서런 서점에 들르고 싶다.


--- 본문 ---


- 책을 빛으로부터 보호할 수만 있어도 절반은 승리한 셈이다. 하지만 책들을 지하실의 어두운 상자 속에 감금해 두고 절대 꺼내 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사이렌의 암흑의 노랫소리에 유혹당해, 책을 꺼내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경우가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 식으로 몇몇 희귀 서적들이 장작더미 위에 얹혔다. (176쪽)


- 시간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책이 결국 필멸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책을 금고에 넣어 단단히 잠그고 아무도 그 책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은 조금씩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서점은 책이 다음 주인에게 갈 때까지 살려 놓는 일을 한다. 이것은 온전히 서점의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예방 조치도 있다. 책을 불 가까이 두지 말 것, 책을 물웅덩이에 던지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잊지 않을 것. (180-181쪽)


- 제임스는 자주 소서런의 좌우명이 ‘여기서 일하기 위해 미쳐야 하는 건 아니지만, 미치는 게 도움은 된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희귀 서적 판매에 발 담글 정도의 괴짜들은 앞으로도 늘 있을 것 같다. (250쪽)


- 이쯤에서 영국의 관행에 대해 한마디 짚고 넘어가겠다. 영국인은 고객 앞을 막아서지 않는다. 기차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군중이 모이면 자동으로 줄을 서는 일을 관습적으로 지킨다. 누군가의 나쁜 행위를 지적하거나 일일이 대응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예의다. 따라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고객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감옥에만 안 갈 뿐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배웠다. (316쪽)


- 생각해 보면 희귀 서적처럼 허약하고 변화무쌍한 존재들 위에 구축된 산업이 수 세기는 고사하고 수십 년만 이어진다 해도 참 신비로운 일이다. 희귀 서적 산업은 ‘카드로 세워진 복잡한 집’ 같다. 각자가 카드 한 자씩을 붙들고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라 눈을 떼지 못한다. 그만큼 위태롭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제의 원칙에 따르지 않고 전적으로 우리 모두 믿고 ‘싶어 하는’ 사실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점에서 멋진 ‘집단적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손에 쥔 책이 가치 있다는 걸 뼛속 깊이 아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충분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다른 사람들도 믿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352쪽)


- 이것이 희귀 서적 판매인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책을 사들이고, 팔고, 오갈 데 없는 책들을 돌보는 것, 그러는 동안 책은 소녀에서 어머니로, 노파로 변해 간다. 세월이 흐르면 어떤 책들은 친숙한 얼굴이 되며, 심지어 해마다 재고를 파악할 때마다 만나는 오랜 친구가 된다. (357쪽)


* 위 책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한 마음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 도도에 오면 마음의 비가 그칩니다>> 평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