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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28. 2021

그래서 뭐 어쩌겠는가

온종일 드라마를 봤다. 옆에 책을 산처럼 쌓아두고 눈은 드라마를 따라가고 머릿속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채로. 욕심이 많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날 하루가 간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집에서 한 자도 못쓰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카페에 간다. 카페 기프트콘도 있겠다 신체 상태도 그럭저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미지근한 물 두 잔을 마시고 냉장고에서 편의점 커피를 꺼내와 책상에 앉는다.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문제다. 엉망진창의 마음을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는 걸지도 모른다. 나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그게 어디라도 말이다.


최근 나는 카페에도 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카페에서도 글쓰기 스코어는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지옥이어서 그럴까. 글로 풀어내기에 내 꼴이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어서 일까. 글을 쓰려면 잘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잘 살지 못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직장이 있고 생활이 안정되고, 그 나에 맞는 적당한 삶의 형태를 지고 있다면 달랐을까.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에게 있는 걸까. 내가 겪는 이 마음의 부침은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움, 설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날이면 그것은 공포가 된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쓰는 게 힘들다고 호소하는 글쓰기 초심자와 같은 마음이다. 마음속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안에 있다. 그 안에서 정신을 바짝 챙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버티고 인내하면 사라지는 감정인 걸까. 문제를 현실에 두고 그것들을 외면하고 정신 승리를 외치며 기다리면 되는 건가. 형태도 모양도 제각각 이겠으나 우리는 삶이 내던지는 문제 앞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풀지도 못할 고통과 괴로움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그저 정신 승리하는 것일까. 이 가혹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면 되는 걸까. 자신을 믿으라, 라는 무수한 자기 계발서의 조언을  따르기에 미더움 같은 건 눈곱 만큼도 찾을 수 없는 나에게 말인가. 한 숨이 나온다.




직장인의 삶을 제대로 경험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나 다양한 회사에 입사와 퇴사와 반복 이력을 가진 나는, 이전 직장인 현 일용직 혹은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앞길이 캄캄하지만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회사에 다녔을 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이 한 마디면 족한 것 같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회사가 마지막 회사라고 여기며, 그곳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마음은 온 간 데 없이 또 퇴사했다. 사는 건 버티는 것이 전부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지금도 버티며 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버티다'라는 동사를 여기저기서 본다. 존 버 정신, 마지막까지 남는 게 승자라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는 생존 전쟁에서 패배한 낙오자다. 하여 필연적으로 내 지배 정서는 패배에 머물러 있고, 내 과거는 그렇게 패배의 서사가 되어버렸다. 서른여섯, 그래, 평범한 인생에 대한 짝 사랑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늦은 건 늦은 거고, 현실은 현실이고, 내가 당장 괜찮아지는 게 급선무라고 아니겠는가,라는 합리화에 몰두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호락호락한 인생이란 없다. 갈등과 괴로움이 이 세계의 디폴트 값이라는 걸 몰랐던 무지였을까. 삶에서 건져내기 어려운 것들, 이를테면 선함과 안전함, 좋은 사람들, 행복 같은 것들이 내 삶의 방향이 되었던 건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였던, 내가 향하고 바라 왔던 그 어리석은 이상향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나의 어둠을 더 커다랗게 만들어냈다. 내게 가까워지면, 나를 조금 알게 되면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의 미로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이런 나를 보면,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고민이 부질없어진다. 즉각적인 감정에 반응하는 예민하고 나약한 나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버티는 것이 차악이라고 믿고 싶다.


따뜻하고 아늑한 내 방에 앉아 이 따위 개소리를 써내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뭐 어쩌겠는가. 아니, 그래서 어쩌겠는가. 자포자기하는 듯 하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돌아보지 않겠다는 배짱을 부리는 듯 하다. 나는 이 모양새로 빚어졌다. 이 모양새가 내키지 않으니 이 세계에서 멀어져 버리겠는가. 어디로 도망갈 곳은 있는가. 저기에서 여기까지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여기나 저기나 인간사 괴로움은 다 한 통 속, 그래서 뭐 어쩌겠는가. 부정의 힘을 빌었으나 다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 자리가 제자리인 줄은 모르겠으나, 어떤 합리화 과정이 글 한 꼭지를 써내게 했다. 아, 역시 모든 건 정신 승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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