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혜 Jun 25. 2024

안 좋을 때도 하는 거야

피어나라 주주

일찍 도착해 건물을 기웃거릴 시간이 충분했다. 복합건물인 탓에 엘리베이터마다 향하는 지점이 달랐다. 우연히 만난 분이 공연장소를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알려줬는데 그곳도 아니었다. 세련된 건물에 보따리장수처럼 낡은 트렁크에 쇼핑백까지 올리고 요란한 바퀴소음을 냈다.


일찍 도착한 대기실, 바람이 건물을 감싸고 있는지 나무들이 계속 흔들렸다. 마치 연습이 부족해 무대에서 떠는 듯한 주주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미완성상태니까 앞으로 채워질 시간에 희망을 걸며 몇 시간을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일상에서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분풀이처럼 주주는 무대만 오르면 초연해진다. 자신이 가진 불안요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데도 목소리를 통해 나아가는 울림은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밀물처럼 그녀에게로 오게 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상기된 얼굴로 주주에게 미소 짓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추켜 세워주고. 누군가는 무덤덤 지나갔다.


노래를 한 배울 때 수업 장소가 여의치 않아 교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한 층만 올라가면 영재~로 시작되는 학생들의 공연을 위한 화려한 무대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그 공연장을 지켜보며 독기를 품었지만 소용없었다. 며칠간은 받아두었던 그 공연 책자를 눈에 보이는 곳에 두어 그 공연장보다 더 큰 무대에 서야지 하는 다짐을 반복했다. 오기에 뒤쳐지는 현실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망망대해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신세다.


실력이 한참 모자라도 계속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을까. 노력한다고 쌓아질 실력의 탑은 접근이 어려울 수 있는데 계속 노래를 불러도 될까 싶다.


그래도 오늘 주주는 피어났다. 리허설 때의 괴상한 듯 엉킨 목소리는 노래의 완성도를 올리려는 노력에 힘입어 티가 안 났다. 목소리가 안 좋은 상태라 포기했으면 안타깝게 보내 버릴 소중한 기회를 품에 안았다. 아름다운 반주와 응원의 에너지를 주는 관객이 있어 한 순간을 감동으로 장식하며 피어났다.


꺼질 듯한 생명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 주주가 계속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꿈의 여정을 담아내며 응원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