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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 Sep 21. 2024

1. 기다리는 너

너는 책을 펴고 앉아.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아. 지금은 8월이야. 8월의 아침. 아직 한낮이 되려면 멀었는데도 벌써부터 찌는듯이 더워. 그리고 넌 시원한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실내에 있지 않아. 넌 서울의 한복판, 청계천변 어느 돌 위에 앉아있어. 그늘은 보잘것없고 공기는 뜨거워.


넌 두 시간 쯤 전엔 고장난 에어컨과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있는 너의 작은 집에서 나왔지. 집은 어제 그랬듯이 오늘도 찜통이야. 8월의 밤은 한낮의 더위를 도무지 식혀주지 않아. 창문을 열어봤자 가끔 바람이 불더라도 훅, 하는 더운 김이 끼쳐 올 뿐이지.


넌 그래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어. 아니, 그래서일지, 어쩌면 오늘의 만남 때문일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와버렸지. 샤워로 잠시 더위를 달래보았지만 집을 나서기 전에도 너는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어.


땀을 흘리면서 너는 부채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면서 약속장소로 향했지. 약속장소는 한 카페였어. 네가 곧 만날 그 사람이 정해준 카페. 너무 덥지만, 버스 한 정거장 거리라 너는 버스비를 아끼기로 해.


너무 일찍 온 나머지 카페는 아직 닫혀 있어. 너는 낙심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근처 편의점으로 향해. 냉장고 칸에서 제일 싼 음료를 집어들고, 괜시리 어슬렁어슬렁 편의점 안을 돌며 시원한 에어컨의 냉기를 쐬며 열기를 식혀. 하지만 결국 계산대로 향해 음료값을 치르고, 단숨에 음료를 목 안에 털어넣지.


곧 카페가 문을 열어. 약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넌 네가 긴장해있다는 걸 새삼 다시 한 번 느껴.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너는 카페 안에는 지금 당연히 카페 사장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그 사람을 당장이라도 마주칠 것 같은 마음에 숨을 들이마시면서 카페 문을 열어. 밝게 인사하는 카페 사장에게 멋적게 주문은 일행이 오면 하겠다고 말하고는 자리에 앉아.


너는 기다려.


너는 기다려.


너는 계속 기다려.


불안감에 사로잡혀. 오지 않으면 어쩌지. 설마 내가 약속시간이나 장소를 착각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 사람이 그냥 마음이 변했으면 어쩌지.


너는 그 사람의 번호도 몰라.


너는 계속 기다려. 약속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약속시간이 되었을 때까지, 10분, 15분, 20분, 22분, 25분, 32분이 지날 때까지.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너는 다급하게 고개를 들지만 네가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아.


카페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너는 스스로 눈치가 보여 도저히 더 앉아 있기가 어려워져. 결국 너는 카페 사장이 잠시 창고에 들어간 사이에 카페를 나서.


밖은 그사이 더 더워졌어. 너는 갈 곳이 없어 카페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청계천으로 향해. 카페 입구를 볼 수 있도록 돌다리를 건너 맞은편으로 향해. 다리 밑을 찾아 조금 널찍한 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러다 다리 밑에서는 카페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하는 수 없이 그 옆의 어느 작은 나무 아래로 옮겨. 더 이파리가 넓고 무성한 나무가 아닌 것을 야속해하면서.


너는 또 기다려. 물이 흘러가는 걸 잠깐 바라보다가, 카페 문이 움직이지 않는지 흘끔 바라보고, 다시 실망해서 청계천을 응시하는 걸 반복해.


꿈이라도 꾼 걸까 싶을만큼 희망이 옅어질 때쯤 너는 네 옆에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걸 발견해. 아주 낡은 책. 푸르스름한 표지는 색이 많이 바랬고 끝은 해졌어. 너는 잠시 바라보다가 책을 집어들어.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카페를 흘깃 쳐다보고는 결국 다시 주저앉아 아무데나 손 가는 대로 책을 펼쳐.


이내 네 앞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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