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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과장 Aug 08. 2021

더하기(+)보다 덜어냄(-)이 더 좋은 이유

조직생활, 글 그리고 말에 대한 짧은 고찰

"ㅂ과장 지금 왜 다 아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건가?"


7월 농산 구매팀 연구 어젠다로, <AI와 농산물>을 발표하던 필자는 갑작스러운 ㅂ전무의 핀잔에 진행을 멈춘다. 예전 같으면 상기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텐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 자리가 끝나고, 진행을 맡은 여후배 ㄱ대리가 메신저로 묻는다. "ㅂ과장님,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셨어요?" 기분이 으쓱했다.


당시 느낀 감정은 권위적인 사내 분위기나 현업 이해도가 낮은 경영진에 대한 치기 어린 불만과 사뭇 달랐다. 필자도 중요한 자리마다 TV 토크쇼에서 의욕 충만한 어느 신인 개그맨 마냥 발언의 양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다. 설득의 힘이 개인에 대한 신뢰성과 자료의 깊이에서 나온다고 믿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꼰대'에서 '조언'으로나 '가벼움'에서 '위트'변화 모두 '덜어냄'이 필요하다


'덜어냄'의 가치는 여러 곳에서 통용된다. '글쓰기'는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다. 지금 ㄱ부장과 2년 남짓 같이 일하면서 간결하게 보고서를 쓰는 스킬을 배웠다. 처음에는 매 문장 '사족'을 붙이는 오랜 습관 탓에 수정 작업을 밥 먹듯이 해야 했지만 덕분에 '간결함'이 갖는 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통상 주제에 관한 깊이 없는 글은 추상어와 미사여구의 지분이 많다. 반면 어린아이조차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은 작은 여백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용의 몰입을 도와준다. 브런치 글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경우, 글을 쓰는 시간보다 퇴고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닌 것들과 기능을 잃은 문장들을 걷어내야, 비로소 진짜가 드러난다.          


말하기 크게 다르지 않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장황한 말버릇과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어려운 이유는 누구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연설을 잘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런 말을 했다. "1시간의 연설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하지 않지만 20분의 연설을 위해서는 2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5분의 연설을 위해서는 하루의 준비가 필요하다." 말이 지닌 힘은 그 길이와 무관하다는 뜻이다. 영업부서에서 근무할 당시, 고객사 제안 미팅이 끝나고 나서 왜 그렇게 많은 얘기를 혼자 떠들었는지 자책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말'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덜어냄'에 대한 준비가 모자랐다.


덜어 내는 것도 세련되어야 한다. 회의 시간에 고개만 숙이고 있는 직장 선배와 사내 인간관계에서 조금의 힘도 소모하지 않으려는 후배, 동료를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신만의 비전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덜어냄'은 Gray 한 중도주의를 주창하는 것으 들리기 쉬운 이유다.


앞서 소개한 직장생활, 글과 말뿐만 아니라 가족, 음악 그리고 인테리어까지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한 영역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덜어냄'은 오랜 기간 훈련을 필요로 한다. 어렸을 적 늘 듣던,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어른들 말씀처럼 쉽게는 들리지만 실제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도 경험이 부족해서 일까? 당분간 일상에서 간결함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느끼는 그날까지 계속 덜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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