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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Nov 20. 2023

내향인 커뮤니티를 시작하며

흩어져 있던 점들이 연결될 때


때는 2022년 여름. 나는 당시 일하고 있던 KBS 뉴스 프로그램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퇴사를 하게 되었고, 

무한히 늘어난 자유시간 앞에 불타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열정을 쏟아 낼 대상은 분명했다.

바로 '내향인'을 다룬 인터뷰 책을 펴내는 것.



내게는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의문들이 있었다.


'왜 사회는 목소리가 크고, 나서기 좋아하는 외향인을 선호할까?'

'나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해야 하나?'

'조직에 잘 섞이지 못하고, 혼자 일하는 게 더 편한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는걸까?'



이런 의문들은 학교를 졸업해 취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며 점차 세상에 대한 좌절과 원망으로 커져갔다. 여전히 내향인은 각종 편견으로 오해받고 있었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했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잔 케인의 TED 강연이 반향을 일으킨지 10년이나 지났지만, 대체 그동안 무엇이 달라진 걸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작은 변화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MBTI 성격 유형검사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16가지 유형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조명받지 못했던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대중들도 '내향인'에 대한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대화가 흔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I라서 주말엔 쉬어줘야 해."

"걔는 E라서 그런 모임 좋아할거야."


왜 김대리는 회식이 끝나고 집 가는 방향이 같아도 빙 돌아갔는지, 

왜 친구 수진이는 시끄러운 관광지 대신 한적한 휴양지를 고집했는지,

사람들은 비로소 가까운 내향들인의 취향과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조용히 숨어있던 내향인들도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내듯, 너도 나도 숨겨왔던 정체성을 드러냈다.

"사실은, 저도 I에요."


내향성을 다룬 콘텐츠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점에는 내향인 관련 에세이나 소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도 심심찮게 내향인 컨텐츠를 선보였다. 댓글창에는 이렇게 많은 내향인들이 어디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내향인들로 북적였다. "내향인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 냈네요", "극 I로서 너무 공감돼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세상으로부터 비로소 이해받기 시작한 내향인들이 감격에 겨운 댓글들을 쏟아냈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나는 안절부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눈에 띄는 내향인 컨텐츠와 내향인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였다. 비슷한 맥락과 키워드를 모으길 좋아하는 수집병 때문인지,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인지 가슴이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이른바 'I밍 아웃'(내향인임을 고백)을 하는 내향인들 중에는 유명한 배우, 창작인, 사업가, 교수들도 포함돼 있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의기소침해 있는 내향인들에게 분명 큰 귀감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내향인들을 한데 모으면, 우리가 가진 힘이 조금은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내향인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면서 알게 된 신기한 사실은, 국내에 내향인들을 위한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간혹 온라인 까페 한 켠에 내향인을 위한 작은 코너가 마련돼 있었지만, 내향인만을 위해 단독으로 만들어진 공적인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외에선 작게는 열댓명부터 수십만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내향인 커뮤니티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지만,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표현이 더 정제되고 조용한 동양권 국가에서 아직 내향인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한국엔 아직 내향인 커뮤니티가 없네..? 그럼 내가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비록 미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향인을 위한 커뮤니티는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시간이 더 흐른다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동기는 분명했다. 나와 같이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남들보다 조금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도 괜찮다고. 
예민하고 내성적인 기질은 결점이나 흠이 아닌 고유한 강점이라고.




도메인을 사고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퇴사 이후 열심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인터뷰집으로 엮어 책으로 출간하고자 했던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주옥같은 답변들이 아까워 직접 만든 사이트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후 바쁜 생업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지만 현재까지 5명의 내향인 인플루언서의 인터뷰를 게시했고, 이제는 소수의 팀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작은 커뮤니티 플랫폼이 되었다. 





                                ✨ 내향인 커뮤니티 '샤인' 홈페이지 : shiningintrovert.kr (링크)




내향인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받게 된 반응은 의외로 더 긍정적이었다.


내향인을 위한 커뮤니티를 시작했다고 여기저기 알리니 '그런 곳이 필요했다!'며 뛸 뜻이 반기던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혼자만의 열정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 했었지만 (사실 지금도..), 내향인 커뮤니티의 수요가 있음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되니 적어도 내향인으로서 겪었던 고충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사회 도처에서 분투하고 있는 내향인들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인터뷰들을 포함해 앞으로도 다뤄질 내향인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다. 이제서야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반가운 내향인 동지들에게 환한 빛을 비추어 세상에 당당히 보여주고 싶다. 이것 보라고, 우리에게도 이렇게 반짝이는 재능이 있다고. 



내향인은 겉으로는 정적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원대하고 큰 꿈을 꾼다.



지금도 희미하지만 흩어져 있던 점들이 모여 조금은 더 또렷한 힘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내향인들이 세상에 미칠 '조용한 영향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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