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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Mar 03. 2024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나도 이젠 빛을 보고 싶어

제가 진리처럼 믿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 행동을 해야지만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만일, 열심히 움직이고 노력을 했음에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요?

그것도 수년에 걸쳐서 말이죠.


지난 몇 년간 저는 다양한 삽질을 해왔습니다.

여기서 '삽질'이라고 한다면 물리적 시간과 돈, 에너지를 들였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소위 '망한 일'을 가리킵니다. 이런 헛수고의 날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헛헛한 감정을 자아낸 것 같네요. 무기력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는 건 당연하고요.


저에게 이런 무망감과 무기력을 안겨준 저의 삽질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삽질의 역사 1.  브런치


저의 삽질의 역사엔 단연 브런치도 포함됩니다.


사색과 글쓰기, 기록을 좋아하기에 매일같이 일기를 쓰던 습관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왔습니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고 이틀만에 통과되어 '역시 내 글이 썩 나쁘진 않나보다'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직장을 다닐 땐 주말마다 틈틈히 시간을 내서, 퇴사를 하고선 글에만 온전히 집중해 브런치 쓰는 맛을 들였습니다. 다소 긴 호흡의 글을 쓰게 되는 저의 글쓰기 습관도 깨닫게 되었구요.


어느새 햇수로는 3년 차. 그동안 공백도 꽤 길었지만, 글 한 편을 발행할 때마다 정성스런 마음을 가득 담아 발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회수는 많아야 100을 넘어본 적이 없고, 메인에 노출이 된다거나, 구독자가 단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거나 하는 경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들어 브런치에서도 이혼, 퇴사, 부동산, 투자와 같이 자극적인 소재의 글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을 보면, 다소 평이한 저의 글감은 세간의 이목을 받기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고 소통하기 위함인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나의 글이 허공에 유영한다는 생각에 글을 쓸 동력을 점차 상실하게 됩니다.



삽질의 역사 2.  디자인 인스타그램 계정


디자인/예술 업계에 있다면 누구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고 홍보를 합니다. 디자인에 막 발을 들였던 입문자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계정을 만들고 제 작품을 여럿 올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몇날 몇일 배운 지식과 기술을 총 동원해 영혼을 갈아가며 작품을 만들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게시' 버튼을 눌렀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 정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시를 하기 전과 후, 지구는 그대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을 뿐이죠. 안타깝게도 세상은 관심이 없습니다.


'게시물이 좀 더 많이 쌓이면 반응이 올거야'라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작품을 올리기를 몇 일, 몇 주, 그리고 몇 달째.. 여전히 세상은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날개 돋힌 듯 좋아요 수와 구독자가 늘어나는 다른 계정들을 지켜보며 저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힘을 잃고, 전투 의지를 모조리 상실해 버렸습니다.




삽질의 역사 3.  디지털 파일 온라인 샵


온라인 클래스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던 시절, 우연히 디지털 파일 판매와 온라인 샵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디자인 소스를 만들어서 온라인 샵에 올리기만 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구매를 하는, 말그대로 '자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처음 알게되었죠. 마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았어요. 강의에서 알려주는 대로 노력만 한다면 저도 금방 손 쉽게 패시브 인컴을 얻게되리라 생각했고, 상상만 해도 기뻤죠.

  

그래서 연휴와 주말을 반납해 온라인 샵 키우기에 매진하면서도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퇴근 후 강의를 듣고, 열심히 시장 분석과 리서치를 해가며 온라인 샵을 만들었고, 정성스레 만든 제품들을 하나 둘씩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미국에 있는 한 고객이 약 $10을 결제했고, 낮에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결제 알림을 보고 속으로 뛸 뜻이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뒤이어 판매는 두어번에 그쳤고, 다른 훨씬 더 전문적인 샵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총 판매 3건을 끝으로 샵은 운영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파일을 판매했던 온라인 샵



삽질의 역사 4.  내향인 커뮤니티


내향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런칭한 지 이제 9개월차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7편의 인터뷰를 발행했고, 40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이제 200명을 간신히 넘겼습니다. 네, 2,000명이 아니고 200명이요. 그것도 광고만 열 댓번을 돌렸는데도 말이죠. 최근에는 뉴스레터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7편의 뉴스레터를 발행했고요.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동기가 되어 저와 같은 내향적인 사람들을 돕고자 시작했던 커뮤니티였지만, 단순히 '이타적인 마음'만으론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선한 동기가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구요.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성과나 반응이 없을 땐,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라며 현타가 올 때가 참 많습니다.  



삽질의 역사는 계속된다.


이런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 하나의 삽질을 시작합니다. 바로 유튜브 채널인데요.

밤을 새가며 만든 영상의 낮은 조회수를 보면서 허탈한 감정을 오랜만에 다시 마주했습니다. '어, 이 익숙한 기분은 뭐지?' 그리고 금세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또다시 삽질을 시작했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데였으면서.' 이쯤되면 저의 특기는 맨 땅의 헤딩하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끈기가 부족했던 탓일까요. 저의 재능이 부족했던 탓일까요.


저의 삽질의 역사는 사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여하겠다며 지난 추석 연휴, 친척집 방문을 뒤로하고 집에 쳐박혀 일주일간 글만 썼던 경험도 있습니다. 결국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공모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요. 묵혀둔 글감은 아직도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이 되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까운데 말이죠.


디자인 굿즈를 판매해 본 경험도 있었네요. 제가 만든 디자인으로 핸드폰 케이스, 그립톡, 티셔츠 등을 판매했는데 커피값 정도를 벌기도 했습니다.


몇 년간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이렇다할 성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잇다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취업준비생이 연달아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며 무기력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노력에 알맞은 성과를 보지 못하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의지도 상실하게 되고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 벗어날 수 없는 늪과 같은 일상.


이젠 이런 일상이 점차 무서워질 지경입니다.

이런 제게도 볕들 날이 올까요?


이 글이 제 삶의 한 편의 기록이 되길 바라며 긴 글을 마쳐봅니다.

여러분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삽질'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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