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거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곱째별 Jun 23. 2024

동거 열아흐렛날

콩이 쾌유 일지-비 갠 '오후만 있던 일요일'


비가 계속 왔다.

콩이 산책과 배변이 걱정이었다.

08:00 콩이 다친 다리에 비닐랩을 감았다. 나도 원도심레츠에서 얻어 온 7부 바지와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그 위에 감청색 등산 모자를 쓰고 낡은 레인부츠를 신었다. 그리고는 콩이를 안고 내려가 우산을 쓰고 콩이 목줄을 바짝 쥐고 조심조심 땅에 내려놓았다. 다행히 빗발이 그치는 듯 잦아들었다. 20m나 갔을까? 콩이 다리의 랩은 사라졌다.

콩이 소변 보면서 660m만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땅에 떨어진 랩을 주워와 버렸다.


어제처럼 콩이를 욕조에 넣고 샤워기로 다리와 배의 흙탕물을 씻어주었다. 쓰던 패드를 바닥에 깔고 콩이를 옮겼다.

헤어드라이기를 꺼내서 전원을 연결해 바람을 불어주었다. 콩이가 놀랄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의연하다. 이 녀석은 신문물을 잘도 받아들인다. 원래 실내 거주 강아지 같다. 하긴 콩이는 19일 동안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떤 소리를 내는지 나를 통해 지켜보았다. 상처가 다 나으면 목욕시키고 미용도 시켜주고 싶다.

털을 말린 후 현관으로 옮겨준 뒤 물과 사료를 주었다. 손으로 주지 않으니 먹다 남긴다.


욕실 하수구 청소를 했다. 스테인리스 거름망을 들어내고 다 쓴 칫솔로 이물질을 꺼내니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 콩이 털이었다. 솔질해서 물때를 벗기고 반짝이는 거름망을 다시 구멍에 막으니 상쾌하다.


칫솔 간식 한 개.

늘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 없을 때도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스파게티 면을 삶고 남은 호박과 슬라이스햄과 미니 파프리카와 양파를 볶아 올리브유와 후추만으로 스파게티를 했다. 마지막에 달걀 한 개 넣어 뜨거운 면으로 익혀서 반숙으로 비빔. 시중에서 파는 소스가 없어도 맛있다. 하루에 한 개도 아껴 먹은 오이소박이는 이제 한 개 남았다.


다큐멘터리 밀린 일들 2023&2024 마무리.  


18:40 비가 개어 마른땅에 콩이를 데리고 나갔다.

소변과 함께 대변도 두 번.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힘쓰는 콩이를 기다려준다.  

그때 논물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바람을 맞으며 zoom-in 했다.

 

논물 위를 스치는 바람=바람이 지나가는 논물


19:30 집에 들어와 잠시 쉬니 속이 비어져서 그런지 콩이는 손으로 주는 남은 사료를 먹고, 50g쯤 더 덜어준 사료도 다 먹었다.

참 잘했어요~.


반찬이 없어서 맨밥에 간장과 참기름과 깨를 넣고 비벼 먹고, 양상추를 피넛월남쌈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있다. 단일하고 순수한 맛.


콩이는 벌써 모로 누웠다.

오늘의 동거 일기 끝.


https://youtu.be/hKI8vLfbqp8?feature=shared

매거진의 이전글 동거 열여드렛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