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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l 03. 2024

동거 스무아흐렛날

콩이 쾌유 일지-나비와 감나무


거친 새벽 빗소리에 깼다.

두 시가 넘어있었다.

잠이 달아났지만 작업실에 가서 노트북을 켜고 싶은 유혹을 이겨냈다. 되도록 해가 떠있을 때 일하는 게 생체리듬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다시 오지 않았다.


콩이가 바깥에 있을 때 비가 오면, 특히 장마처럼 억수 같은 비가 오면 나는 밤새 걱정을 했었다. 만약 콩이가 건강해서 밖에 있었다면 이렇게 비가 올 때 흙탕물이 퍽퍽 튀는 개집에서 엎드려 있었을 것이다. 가끔 낮에 비를 쫄딱 맞고 밖에 서 있는 콩이를 본 적도 있다.

콩이 집 위에는 차양도 없다. 비가 사선으로 들이치면 그대로 개 집 안까지 젖는데 아무도 개집 지붕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7월 말에 콩이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차양이든 지붕이든 만들어줘야 할 텐데 나는 손재주도 없고 공구나 재료도 없으니 정 안되면 내 우산이라도 기둥에 묶어 줘야겠다.

하지만 지금 콩이는 실내에 있어서 비 맞을 걱정하지 않으니 좋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 휴대폰은 금물. 폰에서 나오는 빛이 유해하기 때문이다.

전기스탠드를 켜고 친구의 초록 표지 소설 첫 장을 펼쳤다.

과연 숨 돌릴 새 없이 읽히는 마력이 녹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첨예해졌다.

네 시 혹은 다섯 시 창밖이 밝기 전에 다시 잠에 들었다.  


다시 일어나니 9시.

이 정도 되면 아침 스트레칭 순서를 외울 만도 한데 늘 영상을 찾아 틀고 따라 하는 걸 보아 암기엔 영 소질이 없다.

10시. 콩이를 안고 나가 소변을 보게 산책 시킴. 어제만큼 오늘도 나비가 금계국에 한창이다. 배추흰나비로 보이는 허연 나비가 나풀나풀거리다 꽃술에 앉았다 바쁘다.

아직 남아있는 자귀나무 꽃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어제 아침 기계 소리가 가득해서 보니 길 가 벌초를 했다. 어차피 잘릴 금계국 한 송이를 꺾어 왔다.

맞은편 집 고추 밭 가장자리에 심긴 배추가 겉잎만 버려진 채 사라졌다.

나도 배추를 심고 거두고 싶다.


바가지에 물을 떠서 콩이에게 마시게 하고 빗질을 한 다음 안고 올라가 물로 다리를 씻어 주고 사료 100g 준다. 그리고 다 쓴 로션병에 있던 시든 들꽃을 버리고 물을 갈아준 후 금계국 한 송이를 꽂았다.  

콩이가 사료를 먹다 말기에 손으로 주워서 다 먹였다.


콩이를 먹인 후 나도 어제 저녁식사로 먹고 남은 삶은 감자에 달걀을 삶아 으깨 매쉬드포테이토를 해서 샌드위치를 해 먹었다. 여섯 장이 전부인 식빵을 일주일 만에 다 먹었다.


17시쯤 콩이에게 칫솔 간식 한 개.

 

18시 반쯤 되어 산책을 나갔다. 금계국 지나 자귀나무까지 갔다가 반대쪽 밤나무에게 가보았다.

차 한 대 겨우 다닐만한 길이 휑했다.

설마.......

누군가 밤나무 가지를 잘라버렸다. 다시 보니 밤나무인지 감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덩굴만 잘라내지 나무 가지까지 자르다니.......

그래서 어제 아침 비가 오는데도 그리 오래 시끄러웠던 거였다. 예초기가 아니라 전기톱을 쓴 것 같았다.

나무 아래에는 잘린 가지들이 있었고 덩굴은, 감나무 가지를 죽게 만든 덩굴은 일부 함께 땅에 떨어졌지만 이미 다른 가지들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생물들을 죽게 만드니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이지.


씁쓸한 기분으로 콩이를 데리고 돌아서 왔다.

물 마시게 하고 안고 올라와 사료 100g 주었더니 혼자 다 먹었다.

그리곤 더워하길래 어제와 그제 부채질을 해주다가 오늘은 캠핑용 선풍기를 꺼내 틀어주었다. 콩이는 선풍기 쐴 줄도 안다. 시원하니 좋아한다.  


19:10 콩이 일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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