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의 추모 3 -무안공항 참사 추모 미사

20251123 주일 오후 3시 무안공항

by 일곱째별


11월 23일 오후 3시 일요일 무안공항에서는 추모 미사가 봉헌되었다.

군산 평화바람에서 새벽부터 수산나가 쑨 잣반쌀반 죽을 든든히 먹었다. 그리곤 수산나와 내가 주먹밥을 쌌다. 점심때가 되어 완두, 인디, 해바라기가 운전하는 차에 문정현 신부님, 앵두, 오이, 작두, 무밍, 수산나, 알알이, 토니, 흑미와 내가 나눠 타고 군산에서 무안으로 향했다. 고창 고인돌 휴게소 잣나무 아래에서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을 때까지만 해도 화창했다.

그런데 무안으로 마저 가는 길에 지난주에 발언하셨던 유족 한 분의 부고를 들었다. 간암 투병 중이셨지만 딸과 사위의 참사로 명을 재촉하신 건 아닌지 차 안 분위기가 일순 침통해졌다.


추모의 벽


미사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에서부터 참사 현장까지 2킬로미터 넘게 걸어갔다 왔다. 철책에는 푸른 리본이 가득 묶여있었다. 목포신항에 가면 노란 리본이 가득하듯. 그 아래에는 제상처럼 희생자들이 좋아했을 음료수와 간식이 놓여있었다.

저 너머에 참사 현장인 둔덕이 보였다. 그리고 탕 탕 새를 쫓는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그곳은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이동하는 경로다. 한두 발 총알과 공포탄으로 새를 쫓을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우리는 하제마을 600년 된 팽나무 뒤에 있던 대나무를 하늘 향해 꽂아두고 왔다. 하늘에 계신 분들에게 손짓하듯.



참사 둔덕


오후 3시, 숙연한 추모 미사가 더욱 슬픔에 젖었다.


무안국제공항


문규현, 박공식, 문정현 신부님


영성체


문정현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이 무안공항 참사는 엄청난 참사였습니다. 백일흔아홉 분이 순식간에 산화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윤석열 계엄 선포와 계엄 해제로 완전히 묻혀버렸습니다. 유족들의 아픔이 더 컸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대고 모욕한 사람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이 세상이 그렇게 악할까요?


그래서 이 무안공항을 찾아봤는데 2층에는 아직도 천막이 그대로 쳐있습니다. 유족들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신부님 말씀하신 대로 정부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명확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국토교통부 자체가 유족들을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니 유족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어젯밤에, 딸과 사위가 돌아간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지병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지병이 있었기에 속으로 얼마나 썩어서 어젯밤 아홉 시경에 운명하셨습니다.


이 아픈 곳에 와 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늦게나마 와 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서 가까운 신부님들이랑 12월 29일이 기일인데 그때까지 미사를 봉헌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미사 참여 자체는 자체가 유족들에게 특히 교우들에게 큰 위로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함께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해남의 나무는 나희덕 시인의 시를 조사(弔詞)로 읊었다.



박공식 신부님의 주례로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이 공동집전하신 미사가 끝났다. 문정현 신부님과 완두는 광주 장례식장으로 가시고, 나머지는 차 두 대에 나눠서 익산과 서울, 군산에서 각자 집으로 향했다.

참사와 사고사와 병사와 자연사. 숱한 변수가 널린 세상에서 우리는 다음을 약속하지 못한 채 그저 안녕을 인사하며 미지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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