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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Jun 28. 2023

상처는 따갑고 소독은 신기하다

보건실에서 만나요 (3)

학생이 히히 웃으면서 들어온다. 웃는 눈의 속눈썹이 마치 뷰러로 콱 집은 것처럼 바짝 접힌 모양이 귀엽다. 손에 상처가 났는데 따가워서 보건실에 왔다며 손을 보여준다. 교과서 넘기다가 손이 좀 베였거나 손 거스러미 때문이겠거니 하고 손을 봤는데 웬걸, 손가락과 손등이 만나는 부위에 피부가 뻘겋게 벗겨진 상처가 있었다. 약간 붉고 촉촉한 모양을 보니 물집이 터진 상처 같았고, 손 등에 이렇게 물집이 잡혔다면 화상이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 하고 학생이 내민 손등을 잡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문진을 했다.

 


"화상 입었었나 보네요?"


"네 그으~ 토요일에~ 할머니집 갔는데~ 같이~ 아빠랑~ 저녁에~ 고기 굽다가~ 집게에~ 데었어요"


"아이고 그랬어~ 그래서 화상을 입었어~ 물집 잡혔었겠네?"


"네 물집 생겼어요"


"근데 물집이 터져버렸네?"


"아니요~ 오늘 아침에~ 학교~ 올 때랑~ 아침에 수업 들을 때까지는~ 물집 있었어요"


"학교 와서 물집이 터진 거야?"


"물집이 생긴 건 살면서 처음인데~ 막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기분이~ 신기해서 계속 만졌어요"


"화상으로 물집 생긴 게 살면서 처음이었어~ 신기해서 계속 만졌더니 터져버렸어?"


"선생님 소독하면 따가워요?"



당연히 따갑지! 처음 생긴 물집이 몰캉거리는 것이 신기해 계속 만지면서 그 촉감을 즐기다가 그만 멈춰야 할 때를 놓쳐 물집을 터트리게 되어 상처가 악화된 학생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보건실 3대 질문이 바로 이 "따가워요?" 되시겠다.


보건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수많은 처치 중, 상처소독은 그 빈도수가 가장 높다. 학생들은 활발하고 손바닥부터 무릎까지 온몸에 이런저런 생채기가 난 채 보건실 문을 두드린다. 물론 너무나도 자질구레하고, 작은 상처다. 하지만 상처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외상의 치유에 중요한 일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도 꼭 소독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소독부위가 따갑다는 것이다. 보건실에 온 이상 소독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걸 아는 학생들은 소독을 할 때의 따가움을 유독 두려워한다. 


보건교사로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초등학교 학생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심리학적, 인지적 특징을 바탕으로 질문의 의도를 추론해 명료하게 문장으로 표현할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어쩐지 나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런 능력은 퇴화되는 듯하다. 대신 실무자로서 나름 시행했던 대처방법을 열거해 보겠다.


가장 처음 해 본 방법은 따갑다고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마치 주사를 놓기 전에 "따끔합니다."라고 말한 다음 주사를 놓았던 것처럼, 소독하기 전 "따끔해요~"라고 하며 소독을 시작했었다. 대상자에게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처치 전, 이에 대해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대상자의 자기 조절력을 통한 통증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배웠고 이는 실제로 성인 대상자에게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학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대답을 듣고 기꺼이 상처 부위를 나에게 순순히 맡기는 마치 관우와 같은 학생은 본 적이 없다. 따가울 거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료 거부 의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진물이 줄줄 흐르는 상처를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보건교사와 실랑이를 벌인다.


나로서는 소독을 안 할 수도 없고 안 아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서 내 나름대로 소독 방법을 이것저것 바꿔 봤다. 상품화된 상처 소독 제품부터 생리식염수까지 그리고 각종 거즈와 탈지솜들을 바꾸어가며 조합해 보아도 학생들은 늘 따가워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 해결 방향을 잘못 잡은 노력이었다. 소독과 별개로 상처가 따가운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다음으로 해 본 방법은 정석적인 공감법이었다. 소독해 본 적 있어? 따가울까 봐 걱정되니? 따가운 게 무섭니? 소독할 때 따가워서 울었던 적이 있었니? 따갑겠지만 필요한 일이니 해야 해, 소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까? 같은 질문들을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또 히히 웃으며 주절주절 자기 인생에 살면서 무슨 일로 몇 번이나 소독을 해 봤는지, 그때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거나 처치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하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거사를 결단하기 전의 긴장을 푸는 것 같다. 그래! 관우도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눴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방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이진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부가 까지고 발목이 삐고 친구끼리 놀다가 달리다가 머리가 부딪히거나 뚝뚝 흐르는 코피를 부여잡고 거사를 치르기 위해 학생들이 줄줄이 입장하기 때문에 담소를 나눌 틈이 없다.


조금 더 큰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아픈 건 좋은 거야, 너의 신경계가 이렇게 통증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하고 있다니 네 신경계는 참 기특하네(?) 이렇게 열심히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신경계를 너도 도와줘야겠다(?) 같은 말로 현혹하면서 얼렁뚱땅 위기를 넘기곤 하는데, 이 방법 역시 보건선생님은 이상하다는 개인의 평판을 담보로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이진 않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사용하고 있는 답변은 "모른다"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필요한 일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결연히 시행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필요하지만 동시에 아플 것 같은 일은 결단을 내리는 것 만으로는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글쎄, 우리 친구 몸이 이걸 따가워할지, 따가워한다면 얼마나 따가워할지 선생님은 모르겠는데. 해 보면 우리 알지 않을까?"


너도 모르고 나도 잘 모르겠으니 같이 한번 해 보자고 핀셋 끝에 촉촉한 소독솜을 잡고 눈앞에서 흔들어 본다. 나부터가 화타가 아닌데 관우를 바랄 수 있나. 쓴 약에 딸기맛 시럽을 섞듯 네 호기심을 빌려 섞어본다. 상처는 따갑고 소독은 신기한 일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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