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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Apr 16. 2023

너의 결백

보건실에서 만나요 (2)

보건실 문이 벌컥 열린다. 학생 3명이 뛰어들어오면서 응급상황이라고 리를 친다. 셋 중 명은 오른손을 활짝 펴고 있다. 다친 부위는 손바닥인 것 같고, 우당탕탕 들어오는 기력이 있으니 응급상황은 아닐 것이다. 

 

 추측대로라면 심각한 건 아닌데, 학생들은 아주 진지하다. 큰 목소리로 손을 다쳤으니 네 신발을 대신 벗겨주겠다고 하고, 보건실 방문일지에 대신 이름을 써 다고 한다. 그리고 손을 다친 친구는 응!이라고 하면서 그 배려를 받는다. 도대체 뭘 어쩌다가 손을 다친 건지, 인간적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니?"


"가시에 손이 찔렸어요!"


"의자 잡았는데 갑자기 손이 찔렸대요!"

  

다친 학생이 자기 손을 쫙 핀 상태로 나에게 보여준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손바닥이 하얗게 보일 정도이다. 그 손바닥 아랫부분에 아주 작은, 0.25mm 볼펜심으로 콕 찍은 것 같은 가시가 보인다.


"의자를 이렇게 하다가 따끔해서 보니까 이렇게 가시가 있었어요!"


2학년 학생들이 서로 협동하며 온 몸으로 여기에 책상이 있었고 또 저기에는 의자가 있었다는 설명을 진지한 얼굴로 한 후, 그러다가 의자에 손을 찔렸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역시나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 건 아니다. 단지 우리 2학년 학생들은 아주 많이 놀란 것이다. 그들에게 하교 시간에 선생님 말씀대로 책걸상 정리를 위해 의자 등받침대를 잡고 뒤로 끌었는데 손에 가시가 박힌 이런 일은 난생처음 겪는 기가 막히는 일이. 

 

가시를 빼 주겠다고 하니 다친 학생이 안 아픈 거 맞냐고 몇 번이나 묻는다. 당연히 아플 리가 없다. 그 가시는 손바닥에 박힌 게 아니라 손바닥 각질층에 얹혀 있는 거나 다름고, 보건교사로 몇 년 살다 보니 나 주삿바늘로 가시제거하기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독을 위해 그 부위를 닦아내자, 그 학생은 으앙!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넓은 처치 의자 위로 몸을 날려 도망을 쳤다. 얌전히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있던 두 학생이 눈이 둥그레져서 나를 본다. 얼결에 정강이를 걷어 차인 나는 멍해지고 놀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재직기간이 긴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소독해서 가시가 이만큼 더 들어갔잖아요! 아파요! 무서워요!"


엄지와 검지를 활짝 펴더니 허무맹랑하게도 그 길이만큼 가시가 더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파서  난 것보다 이런 뻥튀기가 어디 있나 싶어 기가 막혔다. 그리고 멀리 도망을 친 학생과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주장했다.


"네 손바닥에 있는 가시의 크기를 봐, 우리 친구가 이야기 한 만큼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친구가 생각해 봐. 그리고 말할 수 있을 때 선생님한테 말하러 와요."


그리고 휴지를 빌려주고는 자리에 앉아 다시 하던 업무를 보는 척을 했다.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일어나 친구를 달랜다.


"나도 가시에 찔려 봤어! 근데 뺄 때는 안 아파!"


"소독하면 아픈데 시간 지나면 안 아파!"


친구들의 응원을 들으니 힘이 나는지, 다시 처치 의자 앞에 앉아서 나를 부른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시가 자기가 이야기 한 만큼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바늘로 가시를 제거할 텐데 아까처럼 움직이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민 손을 채 잡기도 전에


"으아아아아앙!!"


아까보다 더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다시 뒤로 도망을 쳤다. 날래게 피해 이번에는 얻어맞진 않았지만 오열하듯 우는 그 모습을 보니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 나는 것까지 피할 순 없었다.

 

"선생님 힘들겠다..."


하고 보호자로 온 학생들이 서로 속닥거렸다. 하교시간이라 두 학생들은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먼저 집에 가고, 나와 그 학생 둘이서 몇 번 더 그런 실랑이를 벌였다. 기다리고, 손 내밀어 잡으려 하면, 피하고, 기다리고, 손 내밀어 잡으려 하면... 또 피하는 일을 몇 번 하고 나니 기운이 쑥 빠졌다.


"많이.... 많이 못하겠니...??"


하고 소곤소곤 물어보니


"선생님!! 나는 울보예요!"


하고 보건실 바닥에 앉아 더 크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 인간의 신비여!! 아픈 가시를 뽑아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어 보건실에 방문했으며 그 과정에서 친구들의 따뜻한 격려까지 받았지만 마침내 가시를 뽑아야 하는 이 최종적인 처치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이 연약함이여!! 그러나 자신의 두려움을 거짓말로 위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 결백의 강함이여!!!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 작은 인간 속에 있는 이 혼돈이여! 나는 그만 백기를 번쩍 들고 말았다.


뽑지 않겠다고 하니 울음을 뚝 그친다. 집에 가서 뽑겠냐고 하니 그러겠다고 하여 밴드를 붙여주고 가정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서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학생을 돌려보냈다.


며칠 뒤 또 누군가가 다쳤고, 이번에는 그 친구가 보호자로 보건실을 함께 방문했다. 그리곤 그때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도 자기가 그랬지 않냐면서 확인을 한다.


무릅쓸 부끄러움 없는 결백, 그 결백이 틀림없이 미래에 그 학생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자기 내면의 이정표가 되어 주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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