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가 함부로 나서지 않습니다.
나는 사교육 예찬론자이다.
약은 약사에게,
교육은 교육 전문가에게 맡기자
가 지론이다.
어릴 적 자라오면서 사교육을 많이 받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사교육 예찬론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받지 못한 무수한 기회들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어서.
거기에 더해 사교육 예찬론자가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아이와는 좋은 시간만을 가지기 위한 나의 꼼수다. 비록 덧셈 뺄셈이지만, 하기 싫어 몸을 배배 꼬는 아이와 차근차근, 나긋나긋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말 잘 듣고 스스로 따박 따박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많겠지만은, 언제나 그렇듯 그건 내 아이가 아닐 테니까.
내가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은 건 ’따뜻한 정서‘였다. “세상이 널 버릴지라도 우리가 있어..” 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바람 같은 칼날이 허공을 휘젓는 듯한 세상에 나가더라도 가슴 한쪽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가족의 지지를 안고 나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와의 공부는 지양하기로 했다. 분명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나온 나의 감정들이, 아이가 차디찬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아이의 감정들을 야멸차게 베어버릴지도 모르니.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는 걸지 않는 편이 좋다.
남편은 자라면서 사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와달리 사교육 비판론자다.
해서 뭐 하냐. 다 필요 없다.
나중에 할 공부 미리 시키지 말아라
주변에 사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각자 의견이 달랐다. 자기가 받아온 만큼 자연스럽게 그만큼 아이에게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편처럼 비판론자도 많았다. 주로 후자가 더 많았던 거 같다.
나는 그와 꽤나 다른 의견인데, 사교육 비판론자가 될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받아봤으니 좋고 나쁘다 비판이라도 할 수 있지. 그들이 부러웠던 나는 그저 그 비판이 가능한 그들의 위치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지겹고 힘들고 괴로웠을 수 있지만, 그만큼의 사교육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될 놈 됨 안될 놈 안됨’이라지만, 중하에서 중상으로 가는 길은 사교육이 깔아주는 고속도로에 패스트 통행권이 통하는 길이었다. 수없이 제쳐가는 친구들을 보았고, 그들이 받는 사교육의 힘을 보았다.
밤새 혼자 낑낑대며 풀었던 문제들을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원에서 모두 배우고 왔다는 걸 아는 순간 나 혼자만 외딴섬에 덩그러니 떨궈진 기분이었다. 아니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후려친 기분이었다. 매일 같이 야자를 땡땡이치며 신나게 어울려 놀았던 친구의 까만 ‘수학의 정석’을 보았을 때 나의 배신감은 절정에 다다랐다(사람이 아니라 미리 공부하고 와야 했다는 상황에 대해서다). 나의 하얀 ‘수학의 정석’이 보통인줄 알았는데 나는 갑자기 보통에서 특수(?) 반으로 분반이 된 느낌이었다. 분명 나랑 어울려 노느라 학원 다닐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언제 보았냐니까, 고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한번 다 훑고 왔다는 것이 아닌가.
역시 여유는 아무 데서나 나오는 게 아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큰코다친다고, 나는 그해 반성적이 10% 이상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수학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따라가기 벅찼다. (물론 일반적으로 학업 태도 역시 성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선생님마저 이론 설명대신 문제풀이로 바로 들어가셨다. 반 이상이 이미 다 배우고 왔기에.
그래서였을까. 그 패스트 통행권이 그토록 부러웠던 건.
그래서 나는 사교육을 시키기로 했다(물론 아이가 지나치게 거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이긴 하지만). 물론 집의 여력에 비추어봤을 때 꼭 필요하다 여겨지는 것들만으로.
아직까지 아이는 성실히 잘 따라와 주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공부로 실랑이 벌일 일이 숙제 빼곤 없다. (그러나 숙제가 꽤나 많다는 게 함정)
물론 앞으로 아이가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쿨하게 포기하는 엄마이고 싶다.(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어려울 거 같으니 꾸준히 마인드 컨트롤을 연습하려 한다.)
그러니 지금만이라도 교육은 사교육에 맡기고,
지적하고 잔소리하는 대신 같이 놀아주는 엄마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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