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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Jan 11. 2024

나는 글을 왜 쓰는가.

왜 쓰냐고 묻는 그대에게.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꽤나 오래되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써보고 싶다는 건 오래된 바람 중 하나였다.


끼적이고 끼적이던 시간들을 거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인지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올 시간이 온 거 같았다. 운이 좋게도 며칠이 되지 않아 내가 쓴 글이 다음사이트와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며 조회수가  폭발했다. 은근히 뿌듯했고, 슬며시 미소 지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의 완성은, 지겹도록 느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항상성과 평정심에 있다. 반짝하는 기쁨도 잠시, 글의 조회수는 현저히 떨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더해진 시니컬함도 한몫을 했는데, 조회수와 좋아요가 높다 한들, 그런 글들이 여러 개가 되지 못한다면 단지 한 두 글에 대한 자신의 일시적 만족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몰려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읽히지 않는 글을 생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또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만 읽히는 글에 대한 한계는 어찌할 것인가.


고로 귀결되는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쓰는가이다.


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이미 저 바닥으로 가버린 에너지를 짜내 나는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글을 쓰는가.


살기 위해서다.

나라는 존재로 살기 위해.

누군가 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루하루의 나는 기억하지 않는가. 글 쓰는 나를.

회사원으로,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쓴 페르소나를 모두 던져버리고 오롯이 나라는 존재에 침착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리던 나를.


생각해 보면,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이 다음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지난 십 년, 아니 이십여 년의 고민과 생각이 담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록 글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 글을 내고 싶어 끼적였던 수많은 낙서와 메모들이 오늘을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결국 그 하루하루 생각과 고민들이 모이고 쌓이면.

지금은 허접한 글이더라도 내일은, 아니 그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성찰이라는 껍데기를 아주 얇게나마 둘러싸고 세상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들이 쌓이면 그럴싸한 책으로 출판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 쌓이기는 할 테니까.

그러니 먼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귀엽다고, 열심히 달려왔다고 토닥여줄 수 있지 않을까.


좌절과 절망 속에서 다짐했다.

그 누가 뭐라 하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또 나의 글이 그렇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른다 하더라도 내가 나를 아껴주고 응원해 주자고. 아주 작은 1mm의 변화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애쓰고 노력했다고.

그리고 그 부산물로서 나의 글이 존재할 것이라고.

그러니 나만은 나를 알아주자고.




< picture by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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