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이야기.
깊이가 없어요.
이건 꿈이 아니다.
꿈에서나 들을 악몽 같은 이야기.
내가 내 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내 이야기다.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최애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화되기도 했던 소설 '향수'로 유명한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아주 얇은 단편선이었는데, 당시 고등학생으로 타인의 평가에 희비가 갈리는 사회인이 아니었음에도(물론 시험이라는 절대적 평가가 있긴 했지만) 별생각 없이 읽었다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책이다.
아마 내가 사실주의 문학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이즈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파트리트 쥐스킨트는 일반적 '사실주의'라기보다 '마법적 사실주의'로 평가받는 거 같긴 하지만)
소설에는 한 화가가 등장한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두고 깊이가 없다며 그녀를 자꾸만 심해로 몰아간다. 소설 속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왜 그토록 깊이가 없는지 고민하다가 결국 좌절을 안고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사후에야, 그녀의 열정과 깊이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흠....
아니, 왜 살아생전엔
그따위 평가가 없었던 거야!
그럼 그 화가를 더 살게 할 수도 있었잖아.
정작 자신은 실오라기 같은 멘탈을 가져놓고, 남들에게 휩쓸리고 있는 것만 같아 소설 속 화가에게 안타까움을 던져본다.
악플이란 단어가 나오기도 전인 그 시절.(깊이에의 강요는 1995년작으로 알려져 있다)
한치의 혀에서 나오는 잔인한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을 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이야기인지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각자 좋아하는 글에도 취향이 있을 터.
내 경우에는 슬쩍슬쩍 건드리는 이야기가 좋다.
그저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로 들었는데, 두고두고 생각나는 이야기.
그래서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
밥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이야기.
써놓고 보니 참 어려운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하루는 적당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두고서는
하루는 내 글엔 깊이가 없이 가볍다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글쓰기도 인생과 같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다. 오르락 내리락을 위해, 롤러코스터 위에라도 올라타봐야겠다.
<사실주의 문학>
1)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에 반발하면서 개성을 강하게 옹호한 반면, 사실주의는 개성을 중시하기보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묘사하는 객관적 인식을 중시한다. 사실주의 문학에서 추구하고 있는 객관성이란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보는 자세와 관련된다.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 사실주의 또는 리얼리즘(realism)은 사변적 요소와 초자연적 요소를 피하면서 주제를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예술의 사실주의의 일부인 문학 장르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문학 (스탕달)과 러시아 문학 (알렉산드르 푸시킨) 에서 시작된 사실주의 예술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문학적 사실주의는 익숙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시도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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