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정리 #3 복직한 엄마의 가족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 이제 회사 복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집을 떠나 회사로 나가기로 결심한 엄마는 아이와 함께했던 15개월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는 매정한 엄마
생후 9개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들춰업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올해 복직을 하려면 3월에 입학해서 다니기 시작해야 한다.
출생신고 하고 주민등록번호가 생기자마자 대기를 걸어뒀던 어린이집이다.
맘카페, 지역 커뮤니티 샅샅이 찾아봤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내려고.
이 어린이집은 반드시 좋은 어린이집이어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처음부터 다시 리셋이다. 복직후 최대한 변수가 없게끔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 새로운 놀이환경, 낮잠 적응까지. 이 모든 걸 차근차근히 해내려면 충분한 여유기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니 다들 독하다는 눈치다. 아마 시국이 이래서 더 그런 것 같다. 어린이집 간다고 하면 '벌써?'라고 말하는데 별 것 아닌 리액션 같지만 자꾸 그 두글자를 되뇌이게 된다. 벌써?
요즘 어린이집 이런저런 사고 많다던데, 믿을 수 있겠냐, 그래도 애가 말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 의사소통은 될 때 보내는게 좋지 않겠냐 등등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들려온다.
근데 저.. 복직이 얼마 안남았는데요... 출근하고 나면 아기는 누가 봐주나요?
사표를 던질 용기는 없는 나약한 엄마
머리만 간신히 부여잡고 가슴은 집에 놔두고 출근한다.
퇴사가 아닌 복직을 선택한 나는 나쁜 엄마같다. 복직이 아닌 퇴사를 선택한 용기있는 엄마들의 육아스토리를 보다보면 우리 아이만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찝찝하다.
그런데 또 사표 낼 용기는 없다. 나도 내 삶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육아가 힘들 때 회사생활을 곱씹어보면 괜히 없던 애사심도 샘솟는 것 같다. 회사에서 뭔가를 이루어야겠다는 크고 당찬 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그 여느 엄마들처럼 내 자식 훌륭하게 옆에서 잘 키워내고 싶다. 그런데 아직은 뭔가 하나를 확실히 선택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둘 다 쥔채로 있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살게 된다. 직장인 역할도 엄마 역할도 둘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어정쩡하게 주위만 맴돌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출산 후 3개월쯤이었나, 회사가 미친듯이 그리웠다. 회사가 그립다니. 말이 되나? 내 입에서 출근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육아에 멘탈이 털려있다는 소리다. 아침에 어디 갈 곳이 정해져있고, 점심시간을 보장 받으며, 매달 월급이라는 확실한 수단으로 보상 받는 직장인이 너무 부러웠다.
육아휴직 중 회사에서 혹시 조기복직 생각은 없냐고 조심스레 연락을 취해오기도 했다. 솔직히, 솔깃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는 임신 중기쯤 코로나가 터져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주기도 했다. 또 코로나 때문에 겁이나 사람들도 잘 못 만나고 아이랑 둘이 집에 주로 있다보니 반복적인 일상에 조금 지쳐 있기도 했다. 순간 혹하면서 통화중 고개를 돌렸는데 아기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엄마, 어디 가려고?'
다시 육아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솔직히 조금 설레기도 했어
아이와 나 사이, 아름다운 거리두기
남편한테는 차마 말하지 못한 속 이야기.
복직을 마치 도살장에 소 끌려가듯 구슬프게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설레기도 했다.
출근길은 여전히 지옥같은지, 회사 근처 식당들은 여전히 맛이 없는지, 회사 내 책상은 그대로인지 등등. 정말 소소한 것들에 대한 설렘.
육아탈출이라고 말하면 너무 속물같고, 부캐가 생성되어 든든한 느낌이랄까. 내 이름도 있었지. 누구 엄마 말고 내 이름 세글자도 있었지. 이쪽에서 받은 스트레스 저기 가서 잠시 잊어버리고, 저기서 받은 스트레스는 여기서 잊는다. 본캐 부캐 스위치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길.
복직 시기가 다가오니 왜 출산휴가는 3개월이고 육아휴직은 1년인지 이유를 좀 알겠더라. 돌쯤 되니까 훅 자란 느낌이었고 조금 더 지나니 아이도 호불호를 표시하고 인지도 명확히 생겼다. 나 스스로도 아이와 24시간 붙어있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라는게 느껴졌다. 아이가 더 활동적이게 되고 한층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고나니 내 육아도 조금씩 지쳐갔다. 고차원적인 사고라고 해봤자 응, 아니 뿐이지만 아니의 늪은 너무 깊고 강했다.
더이상 밥 잘 먹이고 잠 잘 재우면 만사 오케이인 육아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고집이 세진 아기에게 언성을 높이게 되고 짜증도 표출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육아는 이게 아니었는데.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런 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기와 나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양보다 질을 우선한 육아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렘도 잠시.
웬만한 변수는 다 상상해보고 고려했다고 생각했는데, 복직 이후..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남편이랑 하루가 멀다하고 누가누가 더 힘든가 내기하는 느낌이 든다.
복직하고 나니 적응해야 할 것 투성이다. 회사와 육아, 그 무엇하나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한다.
그런데 가정에서도 아이와 남편 모두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한다고 눈치 보이고 집에는 늦게 가게 되니 거기서 또 눈치가 보인다.
눈치 주는 사람은 없는데 왜 나는 계속 눈치를 보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아기가 나한테 단단히 삐진 듯 하다.
가뜩이나 원래도 아빠껌딱지였던 아기가 나는 본체만체하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출근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하루종일 함께 했던 할머니가 집에 가시려고 하면 울고불고 붙잡는다.
아이가 나를 잊은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는 멘탈이 힘들고, 남편은 육체적으로 지쳤다. 아이가 나에게 오질 않고 아빠한테만 매달리며 아빠가 다른 것을 하게 가만두질 않는다.
내가 과연 엄마가 맞나?
본래의 목적을 잊지말자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육아
생각해보면 육아를 전담할 땐 육아하니까 힘들다 하고, 복직하니 일해야 해서 힘들다 한다.
육아할 땐 육아가 얼마나 힘든데! 라며 소리쳐놓고, 남편한텐 아침에 아기 보는게 뭐가 힘드냐고 한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이만큼 이기적인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복직을 앞두고 있을 때도, 육아는 양보다는 질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할 거라고 큰소리 쳤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 회사에서 힘들었으니 쉬기 바쁘다. 주말에도 자꾸만 눕고 싶고, 회사 다니느라 평일에 하지 못했던 잔업무들을 처리하기도 바쁘다.
이 모든게 아이도 다 느껴지지 않았을까. 엄마의 출근만 가지고 서운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나와 함께 있을 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다 받았을 것 같았다.
남편과의 열띤 토론(이라고 쓰고 다툼이라 읽는다) 후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이랬다.
그래서 함께 있는 동안 만큼은 최선을 다해 놀아주기로 했다. 정말 영혼을 갈아넣었다. 작은 행동에도 크게 칭찬하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말 안듣는 몸뚱이를 이끌고서라도 열심히 춤도 함께 춰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금세 날보고 환하게 웃었다.
'밸런스'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구나. 워라밸이 중요하듯, 나한테 필요한건 워육밸이었다. 워크와 육아의 밸런스. 역시 다 내가 못나서 그랬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복직 이후의 삶이다.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지만 또 언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 모르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회사선배에게 물어보니 아직까지도 여전히 와이프랑 싸우고 여전히 육아는 힘들다고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육아와 일의 밸런스. 그리고 위태위태하지만 아름답게 잘 지켜내야하는 우리 가족 서로의 관계.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커다란 숙제가 하나 생겼다.